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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겨온 글248

좀 걸어 보는 일-황형철 거창한 목적이 있는 건 아니지만 끼니를 챙기듯 긴요한 일  자동차도 오토바이도 헐떡이며 지나가는 숨 가쁜 도심에서 우직하게 걸어 보겠다는 것은  지렁이도 달팽이도 자기 길 열심히 가는 매진과 마주하는 산뜻한 발견의 일  어쩌다 마주한 능소화 앞에서 슬쩍 담을 넘보기도 하고  혼잣말 엿듣는 참새 떼와 자꾸 뒤를 따라오는 꼬리구름에게 핀잔을 주기도 하면서  지나가는 것들에게 곁도 내주고 고요히 깊어지는  별것도 아니지만 진짜 별도 볼 수 있는 좀 걸어 보는 일  2024년 11월 7일 미션픽 아침 ↑ ↓ 2024. 11. 8.
동행-이수동 꽃 같은 그대 나무 같은 나를 믿고 길을 나서자  그대는 꽃이라서 10년이면 10번 변하겠지만 난 나무 같아서 그 10년 내 속에 둥근 나이테로만 남기고 말겠다  타는 가슴이야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길가는 동안 내가 지치지 않게 그대의 꽃 향기 잃지 않으면 고맙겠다 2024. 10. 22.
사랑 그 그리움-최수월 무참히 짓누르는 아픔 견디다, 견디다 못해 때론 잊어 볼까도 했지만 가슴에서 지운다는 건 이별보다 더 잔인한 것을  기다림의 고독 속으로 또 하루가 무심히 기울고 내일 또다시 떠오르는 태양 아래 모래시계 그리움일 테지만 그리워할 수 있는 한 가슴은 아픔보다 행복이 먼저라고  사랑했으므로 그 아픔까지 사랑하기에 오늘도 습관처럼 그리워 그대 창가 서성거리는 것을 2024. 10. 16.
석산-박수용 빛과 그늘 사이꽃과 잎이 닿지 않아한 줄기에 두 마음이 산다 허공에 틔운 손쉬이 달리지 못해끌어당겨도 와닿지 않는 빛 못 이운 초야발그레한 볼마다붉은 기다림 꽃대 야위어 긴 목 날리니잎 그리는 춤사위당신을 물들이고 있다 글보기 ☞ 석산(꽃무릇) 2024. 10. 4.
있는 그대로-이현주 눈앞에 있는 것들을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다가오는 것들을오는 그대로 맞아들이기 떠나가는 것들을가는 그대로 떠나보내기 얼마나 쉬운 일인가?오,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2024. 9. 20.
사랑한다는 것은-이상윤 사랑한다는 것은 그냥 그렇게 물 흐르듯 사는 일이 아니다  긴긴 세월을 모난 돌로 태어나 나의 살을 깎는 일 그것이 사랑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냥 그렇게 눈부신 봄날처럼 다가오는 일이 아니다  새순 같은 눈으로 바람 부는 세월을 지나 겨울 강 하나 건너는 일 그것이 사랑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냥 그렇게 만나고 만나서 하나 되는 일이 아니다  인연이란 이름의 그리움 하나 안고 내가 너의 길이 되어 가는 일 그것이 사랑이다  날마다 꽃잎 하나 떨어지는 두려움으로 내가 사는 일이다 2024. 9. 1.
작은 이름 하나라도-이기철 이 세상 작은 이름 하나라도 마음 끝에 닿으면 등불이 된다 아플 만큼 아파 본 사람만이 망각과 폐허도 가꿀 줄 안다  내 한때 너무 멀어서 못 만난 허무 너무 낯설어 가까이 못 간 이념도 이제는 푸성귀 잎에 내리는 이슬처럼 불빛에 씻어 손바닥 위에 얹는다  세상은 적이 아니라고 고통도 쓰담으면 보석이 된다고 나는 얼마나 오래 악보 없는 노래로 불러왔던가  이 세상 가장 여린 것, 가장 작은 것 이름만 불러도 눈물겨운 것 그들이 내 친구라고 나는 얼마나 오래 여린 말로 노래했던가  내 걸어갈 동안은 세상은 나의 벗 내 수첩에 기록되어 있는 모음이 아름다운 사람의 이름들 그들 위해 나는 오늘도 한 술 밥, 한 쌍 수저 식탁 위에 올린다  잊혀지면 안식이 되고 마음 끝에 닿으면 등불이 되는 이 세상 작은 이름.. 2024. 8. 12.
여름꽃-이문재 그대와 마주 서기는 그대 눈동자 바로 보기는 두렵고 또 두려운 일이어서  저기 뜨락에 핀 꽃 여름꽃을 보고 있다 어둠의 끝에서 몸을 활짝 열었던 아침꽃들 정오가 오기 전에 꽃잎으로 제 얼굴을 가리고 안으로 돌아가 있다 해를 바로 보기가 어려운 것이다  어려워서 여름꽃은 꽃잎을 모아 합장한다 여름꽃은 자기 안으로 들어가 해의 눈동자가 된다 2024. 7. 24.
사랑의 발명-이영광 살다가 살아보다가 더는 못 살 것 같으면 아무도 없는 산비탈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누워 곡기를 끊겠다고 너는 말했지  나라도 곁에 없으면 당장 일어나 산으로 떠날 것처럼 두 손에 심장을 꺼내 쥔 사람처럼 취해 말했지  나는 너무 놀라 번개같이, 번개같이 사랑을 발명해야만 했네 2024. 7. 17.
가는 길-김소월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번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강물 뒷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2024. 7. 11.
노을을 적다-천양희 노을이 저 혼자 붉다 바다는 놀빛을 당겨 물위에 적는다 좋은 시 한 편 공양받은 하늘 한쪽이 붉다  하늘도 때로 취할 때가 있으니 하루에도 몇 번 길을 내는 바다를 누가 바라만 보라고 바다라 했나 보라 넘치지 않는 건 저것뿐이다  하늘을 안고 있는 건저것뿐이다 저런! 2024. 7. 6.
겪어봐야 알게 되는 것 굶어보면 안다. 밥이 하늘인 걸 목마름에 지쳐보면 안다. 물이 생명인 걸 일이 없어 놀아보면 안다. 일터가 낙원인 걸 아파보면 안다. 건강이 엄청 큰 재산인 걸 이별하면 안다. 그이가 천사인 걸 지나 보면 안다. 고통이 추억인 걸 불행해지면 안다. 아주 적은 게 행복인 걸 죽음이 닥치면 안다. 내가 세상의 주인인 걸  출처: MBN '동치미' 2024. 6. 24.
멀고 먼 길-김초혜 오 하느님 나이는 먹었어도 늙은 아이에 불과합니다  햇살은 발끝에 기울었는데 내 몸이나 구하자 하고 굽은 마음 어쩌지 못해 얼굴을 숨기기도 합니다  몸 안에 가득 들여놓은 꽃은 붉은 조화 나부랭이였습니다  어찌 고요를 보았다 하겠습니까 2024. 6. 22.
우리의 생애가 발각되지 않기를-허연 사랑이 끓어넘치던 어느 시절을이제는 복원하지 못하지.그 어떤 불편과 불안도 견디게 하던육체의 날들을 되살리지 못하지.적도 잊어버리게 하고, 보물도 버리게 하고,행운도 걷어차던 나날을 복원하지 못하지.  그래도 약속한 일은 해야 해서재회라는 게 어색하기는 했지만 때맞춰 들어온 햇살에 절반쯤 어두워진 너.수다스러워진 너.여전히 내 마음에 포개지던 너. 누가 더 많이 그리워했었지.오늘의 경건함도 지하철 끊어질 무렵이면 다 수포로 돌아가겠지만서로 들고 왔던 기억.그것들이 하나도 사라지지 않았음을.그것이 저주였음을.  재회는 슬플 일도 기쁠 일도 아니었음을.오래전 노래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음을.  그리움 같은 건 들키지 않기를.처음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기를.지금 이 진공관 안에서 끝끝내 중심 잡기를  당신. 가지.. 2024. 6. 20.
꽃으로 지고 싶어라-양광모 바람 한 점에 꽃잎 수십 점  꽃잎 한 점에 시름 수십 점 흩어지네  꽃으로 피어나지 못했어도 꽃으로 지고 싶은 봄날에는  왜 사냐 건 웃지요 왜 웃냐 건 또 웃지요 2024. 6.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