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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겨온 글239

비움의 미학 사람이 아름답게 보이는 건 그 무엇을 채워갈 때가 아니라 비워갈 때이다. 사람이 더 아름답게 보이는 건 그 무엇이건 다 비워 놓고 채우지 않을 때이다. 사람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건 그 무엇이나 다 비워 놓고도 마음이 평화로울 때이다. -나승빈- 2024. 3. 10.
無言으로 오는 봄 뭐라고 말을 한다는 것은 天地神明께 쑥스럽지 않느냐, 참된 것은 그저 묵묵히 있을 뿐 호들갑이라고는 전혀 없네. 말을 잘함으로써 우선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 그 무지무지한 추위를 넘기고 사방에 봄빛이 깔리고 있는데 할 말이 가장 많을 듯한 그것을 그냥 눈부시게 아름답게만 치르는 이 엄청난 비밀을 곰곰이 느껴 보게나. - 박재삼 - 2024. 2. 9.
존재와 부재 뭐라지 마세요 당신들이 사치스럽게 살아온 그 시간들, 등신 같은 이 사람은 굽은 터널, 어둠 속을 넘나들었습니다 그나마 내가, 이런 글이라도 쓴다는 것은 살고 싶어서입니다 하지만 때때로 더 못 견디고 힘들면 마약 같은 술을 가슴에다 붓습니다 - 신석종 - 2024. 1. 29.
시작한다는 것 시작한다는 것은 안 된다는 걸 믿는 것이 아니라 된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확률이 아무리 낮아도 그것이 하고픈 일이고 꿈이라면 그 낮은 확률에도 희망을 갖고 나의 길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 이동식 - 2024. 1. 14.
한 해, 당신 때문에 행복했습니다 오늘이 무거워 고개를 떨구고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살며시 다가와 어깨를 감싸며 해님처럼 웃어주던 당신 때문에 행복했습니다 꼭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꼭 하고 싶은 말도 망설이고 있을 때 '힘내'라는 당신의 따뜻한 한마디는 용기 없는 나를 새롭게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 어떤 시련도 우리에겐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있음을 '헐 수 있어'라는 자신감은 '헐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을 몰아내는 가장 단단한 무기임을 배웠습니다 불평과 불만으로 누구를 원망하고 비난했을 때 너그러운 당신의 마음은 이해심이 부족한 나를 부끄럽게 했습니다 봄볕에 새싹이 돋듯 다시 태어나는 나를 기대하며 소망의 새해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은 슬기로운 당신의 가르침 덕분이 아니겠는지요 하루하루 은혜의 별들이 내 작은 가슴에서 은하수처럼.. 2024. 1. 1.
온유(溫柔)에 대하여 온유에 대하여 이야기하던 그 사람 빈집 안의 작은 불꽃이 오늘은 더욱 맑고 섬세하구나. 겨울 아침에 무거운 사람들 모여서 온유의 강을 조용히 건너가느니 주위의 추운 나무들 눈보라 털어내고 눈부신 강의 숨결을 받아마신다. 말과 숨결로 나를 방문한 온유여, 언 손을 여기 얹고 이마 내리노니 시끄러운 사람들의 도시를 지나 님이여 친구가 어깨 떨며 운다. 그 겸손하고 작은 물 내게 묻어와 떠돌던 날의 더운 몸을 씻어준다. 하루를 마감하는 내 저녁 속의 노을, 가없는 온유의 강이 큰 힘이라니! 나도 저런 색으로 강해지고 싶었다. 불타는 뜬구름도 하나 외롭지 않구나. - 마종기 - 2023. 12. 27.
원시(遠視)-오세영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답다. 무지개나 별이나 벼랑에 피는 꽃이나 멀리 있는 것은 손에 닿을 수 없는 까닭에 아름답다. 사랑하는 사람아. 이별을 서러워하지 마라. 내 나이의 이별이란 헤어지는 일이 아니라 단지 멀어지는 일일 뿐이다. 네가 보낸 마지막 편지를 읽기 위해선 이제 돋보기가 필요한 나이, 늙는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보낸다는 것이다. 머얼리서 바라다볼 줄을 안다는 것이다. 2023. 11. 28.
눈물을 가슴에 담은 이들에게-이수인 무심코 바람이 불어와 눈물샘을 건드린다 구름이 비가 되어 내리듯 서러움과 한서린 시름이 모아지면 눈물비가 내린다 흐느낌도 없이 서러운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황량한 겨울숲처럼 남아 있는 삶 살아 있는 한,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 이수인 - 2023. 11. 20.
억새-홍수희 그리워도 그립다 말하지 않네 보고파도 아닌 체 먼 산만 보네 기다리다 돌아서면 등뒤에 서서 눈물처럼 하얗게 손짓만 하네 2023. 11. 15.
화-정덕재 욕을 하거나 주먹으로 문을 치다가 발을 들었는데 찰 것이 마땅치 않다 굳건한 철제책상 며칠째 물을 주지 않아 목을 길게 빼고 있는 蘭 2초 남짓 들었던 발은 잠시나마 분노를 분석한다 발이 본 것은 단단하게 서 있는 책상과 가냘프게 연명하는 잎새 화가 발로 향할 때 판단하고 사유하는 발 세상의 씨발이 그렇게 태어났다 2023. 11. 12.
오래된 가을-천양희 돌아오지 않기 위해 혼자 떠나 본 적이 있는가 새벽 강에 나가 홀로 울어 본 적이 있는가 늦은 것이 있다고 후회해 본 적이 있는가 한 잎 낙엽같이 버림받은 기분에 젖은 적이 있는가 바람 속에 오래 서 있어 본 적이 있는가 한사람을 나보다 더 사랑한 적이 있는가 증오보다 사랑이 조금 더 아프다고 말한 적이 있는가 이런 날이 있는가 가을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는 것 보라 추억을 통해 우리는 지나간다. 스마트폰에서 동영상보기 ☞ https://youtu.be/MzNUhmEm784 Coyote Hills Regional Park산책(Oct27-2023) 2023. 10. 30.
가을-조병화 전투는 끝났다 이제 스스로 물러날 뿐이다 긴 그 어리석은 싸움에서 그 어리석음을 알고 서서히, 서서히, 돌아서는 이 허허로움 아, 얼마나 세상사 인간관계처럼 부끄러운 나날이었던가 실로 살려고 기를 쓰는 것들을 보는 것처럼 애절한 일이 또 있으랴 가을이 접어들며 훤히 열리는 외길, 이 혼자 이제 전투는 끝났다. 돌아갈 뿐이다. 2023. 10. 24.
10월-오세영 무언가 잃어간다는 것은 조금씩 성숙해 간다는 것이다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때, 돌아보면 문득 나 홀로 남아 있다 그리움에 목마르던 봄날 저녁 분분히 지던 꽃잎은 얼마나 슬펐던가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때, 이 세상에는 외로운 목숨 하나 걸려 있을 뿐이다 낙과여 네 마지막의 투신을 슬퍼하지 말라 마지막의 이별이란 이미 이별이 아닌 것 빛과 향이 어울린 또 한 번의 만남인 것을 우리는 하나의 아름다운 이별을 갖기 위해서 오늘도 잃어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 오세영 - 2023. 10. 18.
언제 삶이 위기 아닌 적 있었던가 언제 삶이 위기 아닌 적 있었던가 껴입을수록 추워지는 것은 시간과 세월뿐이다. 돌의 냉혹, 바람의 칼날, 그것이 삶의 내용이거니 생의 질량 속에 발을 담그면 몸 전체가 잠기는 이 숨 막힘 설탕 한 숟갈의 회유에도 글썽이는 날은 이미 내가 잔혹 앞에 무릎 꿇은 날이다 슬픔이 언제 신음 소릴 낸 적 있었던가 고통이 언제 뼈를 드러낸 적 있었던가 목조계단처럼 쿵쿵거리는, 이미 내 친구가 된 고통들 그러나 결코 위기가 우리를 패망시키지는 못한다 내려칠수록 날카로워지는 대장간의 쇠처럼 매질은 따가울수록 생을 단련시키는 채찍이 된다 이것은 결코 수식이 아니니 고통이 끼니라고 말하는 나를 욕하지 말라 누군들 근심의 힘으로 밥 먹고 수심의 디딤돌을 딛고 생을 건너간다 아무도 보료 위에 누워 위기를 말하지 말라 위기의 .. 2023. 10. 13.
가을 들녘에 서서 눈멀면 아름답지 않은 것 없고 귀먹으면 황홀치 않은 소리 있으랴 마음 버리면 모든 것이 가득하니 다 주어버리고 텅 빈 들녘에 서면 눈물겨운 마음자리도 스스로 빛이 나네 - 홍해리 - 2023. 10.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