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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겨온 글237

언제 삶이 위기 아닌 적 있었던가 언제 삶이 위기 아닌 적 있었던가 껴입을수록 추워지는 것은 시간과 세월뿐이다. 돌의 냉혹, 바람의 칼날, 그것이 삶의 내용이거니 생의 질량 속에 발을 담그면 몸 전체가 잠기는 이 숨 막힘 설탕 한 숟갈의 회유에도 글썽이는 날은 이미 내가 잔혹 앞에 무릎 꿇은 날이다 슬픔이 언제 신음 소릴 낸 적 있었던가 고통이 언제 뼈를 드러낸 적 있었던가 목조계단처럼 쿵쿵거리는, 이미 내 친구가 된 고통들 그러나 결코 위기가 우리를 패망시키지는 못한다 내려칠수록 날카로워지는 대장간의 쇠처럼 매질은 따가울수록 생을 단련시키는 채찍이 된다 이것은 결코 수식이 아니니 고통이 끼니라고 말하는 나를 욕하지 말라 누군들 근심의 힘으로 밥 먹고 수심의 디딤돌을 딛고 생을 건너간다 아무도 보료 위에 누워 위기를 말하지 말라 위기의 .. 2023. 10. 13.
가을 들녘에 서서 눈멀면 아름답지 않은 것 없고 귀먹으면 황홀치 않은 소리 있으랴 마음 버리면 모든 것이 가득하니 다 주어버리고 텅 빈 들녘에 서면 눈물겨운 마음자리도 스스로 빛이 나네 - 홍해리 - 2023. 10. 4.
가을의 시 묵은 그리움이 나를 흔든다 망망하게 허둥대던 세월이 다가선다 적막에 길들으니 안 보이던 내가 보이고 마음까지도 가릴 수 있는 무상이 나부낀다 - 김초혜 - 2023. 9. 28.
그대에게 가는 길 개울은 냇가로 내는 강으로 강은 바다로 향하듯이 그대에게 가는 길 가다 보면 때론 지치기도 망설임이 찾아들 기도 하겠지만, 언젠가는 하는 생각만으로도 어서 가자 하지 않아도 걸음 가볍습니다. 그러나 힘겹다 아득하다 하여 만날 수 없다 하여 가지 아니할 가 - 김선숙 - 2023. 9. 21.
혼자의 팬데믹 혼자 살아본 적 없는 혼자가 혼자 살고 있다 ​혼자 떠나본 적이 없는 혼자가 저 혼자 떠나고 있다 ​혼자가 혼자들 틈에서 저 혼자 혼자들을 두고 혼자가 자기 혼자 ​사람답게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저마다 삶을 살고 있다 ​춤과 노래가 생겨난 이래 지구 곳곳에서 마음 안팎에서 처음 마주하는 사태다 ​이 낯선 처음이 마지막인지 아니면 이것이 진정 새로운 처음인지 혼자서는 깨닫기 힘든 혼자의 팬데믹이다 - 이문재 - 2023. 9. 14.
바람 너는 바람이기에 나는 너를 느꼈지만 네가 바람이기에 나는 너를 머무르게 할 순 없었다. - 엄지용 - 2023. 9. 12.
바닥에 대하여-정호승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은 말한다 결국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고 바닥은 보이지 않지만 그냥 바닥까지 걸어가는 것이라고 바닥까지 걸어가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바닥을 딛고 굳세게 일어난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고 발이 닿지 않아도 그냥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은 없다고 바닥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 정호승 - 2023. 9. 6.
강은 가르지 않고, 막지 않는다 - 신경림 강은 가르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을 가르지 않고 마을과 마을을 가르지 않는다. 제 몸 위에 작은 나무토막이며 쪽배를 띄워 서로 뒤섞이게 하고, 도움을 주고 시련을 주면서 다른 마음 다른 말을 가지고도 어울려 사는 법을 가르친다. 건너 마을을 남의 나라 남의 땅이라고 생각하게 버려 두지 않는다. 한 물을 마시고 한 물 속에 뒹굴며 이웃으로 살게 한다. 강은 막지 않는다. 건너서 이웃 땅으로 가는 사람 오는 사람을 막지 않는다. 짐짓 몸을 낮추어 쉽게 건너게도 하고, 몸 위로 높이 철길이며 다리를 놓아, 꿈 많은 사람의 앞길을 기려도 준다. 그래서 제가 사는 땅이 좁다는 사람은 기차를 타고 멀리 가서 꿈을 이루고, 척박한 땅 밖에 가지지 못한 사람은 강 건너에 농막을 짓고 오가며 농사를 짓다가, 아예 농막을.. 2023. 9. 3.
세상살이 어느 때 가장 가까운 것이 어느 때 가장 먼 곳이 되고 어느 때 충만했던 것이 어느 때 빈 그릇이었다 어느 때 가장 슬펐던 순간이 어느 때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오고 어느 때 미워하던 사람이 어느 때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오늘은 어느 때 무엇으로 나에게 올까 - 김춘성 - 2023. 8. 29.
8월 8월은 분별을 일깨워주는 달이다 사랑에 빠져 철없이 입맞춤하던 꽃들이 화상을 입고 돌아온 한낮, 우리는 안다 태양이 우리만의 것이 아님을, 저 눈부신 하늘이 절망이 될 수도 있음을, 누구나 홀로 태양을 안은 자는 상철 입는다 쓰린 아픔 속에서만 눈뜨는 성숙, 노오랗게 타버린 가슴을 안고 나무는 나무끼리 풀잎은 풀잎끼리 비로소 시력을 되찾는다 8월은 태양이 왜, 황도黃道에만 머무는 것인가를 가장 확실하게 가르쳐주는 달 - 오세영 - 2023. 8. 19.
기도 쫓기는 듯이 살고 있는 한심한 나를 살피소서 늘 바쁜 걸음 천천히 걷게 하시며 추녀 끝의 풍경 소리를 알아듣게 하시고 거미의 그물 자는 마무리도 지켜보게 하소서 꾹 다문 입술 위에 어린 날에 불렀던 동요를 얹어 주시고 굳어 있는 얼굴에는 소슬바람에도 어우러지는 풀밭 같은 부드러움을 허락하소서 책 한 구절이 좋아 한참을 하늘을 우러르게 하시고 차 한 잔에도 혀의 오랜 사색을 허락하소서 돌 틈에서 피어난 민들레꽃 한 송이에도 마음이 가게 하시고 기왓장의 이끼 한 낱에서도 배움을 얻게 하소서 - 정채봉 - 2023. 8. 10.
지혜롭게, 용기 있게 버텨야 할 때가 있고 돌아서야 할 때가 있다 나아가야 할 때가 있고 멈춰야 할 때가 있다 맞서야 할 때가 있고 피해야 할 때가 있다 살펴봐야 할 때가 있고 눈감아야 할 때가 있다 때를 알고 때에 맞게 행동하는 것 지혜롭게, 용기 있게 자기만의 삶을 사는 것 - 최명숙 - 2023. 7. 30.
나에게로 가는 여행 가끔은 시외버스에 몸을 싣는다. 도착지도 없이 특별한 이유도 없이 차창 밖으로 멀어져 가는 넓은 들판 바라보면 가슴이 환해지고 상쾌한 바람 하얀 이마 스쳐갈 때면 괜시리 마음 설레어진다. 복잡한 삶들 속에서 이리저리 부딪치면 나를 느낄 수 있다. 평소에 찾을 수 없었던 또 다른 나의 모습까지도..... 가끔은 도착지도 없이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저 나의 모습을 만나기 위해 나에게로 가는 여행을 떠난다. - 이승희 - 2023. 7. 24.
찰나의 무채색 너는 맨발로 걸어와 깊은 발자국을 남겼고 너는 빈손으로도 내 세상을 가득 채워주었고 너는 체취만으로 나를 물들였다. -나선미 - 2023. 7. 14.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원태연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아침에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으며 내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걸 알았습니다. 참으로 따뜻하고 행복합니다. 언젠 가부터 저는 행복이 TV드라마나 CF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거울을 통해서 보이는 제 눈동자에서도 행복이 보인답니다.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어쩌면 이렇게도 좋은 일들만 생길 수가 있는지. 그렇게 늦게 오던 버스도 어느새 내 앞에 와 어서 집에 가 전화를 기다리라는 듯 나를 기다려주고 함께 보고 느끼라는 듯 감미로운 사랑 얘기를 테마로 한 영화들이 속속 개봉되고 읽어보고 따라 하라는 듯 좋은 소설이나 시집들이 눈에 띄고 있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그의 생일이 찾아옵니다. 그의 생일날 무슨 선물을 건네줄까 고민하는 내 모습이 참 이뻐보입.. 2023. 6.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