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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백패킹17

2박3일 백패킹 Tahoe Rim Trail-3일차 툭 자르르... 툭 자르르... 비가 오는 것 같지 않은데 밤의 정적을 깨며 텐트를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뜬다. 이게 무슨 소리지? 차오른 방광의 불편함을 해소할 겸 헤드랜턴을 들고 밖으로 나오니 싸늘한 가을 새벽바람에 소나무 잎사귀가 텐트 위로 떨어지면서 내는 소리다. 커다란 소나무가 운집한 곳에 텐트를 설치했던 불찰이 곤한 잠을 깨운 것이다. 2023년 새해 인사를 주고받은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소슬바람 부는 9월 하순에 접어들었다. 가는 세월 잡을 수 없고, 오는 세월 막을 수 없다지만 허벌나게 빠른 세월을 절감하는 요즘엔 하루가 한 시간, 일주일이 하루, 한 달이 일주일 같다. '세월아 갈려거든 너 혼자 가지 왜 나를 데리고 가냐'라고 하셨던 엄니 말씀이 생각나는 새벽이다. 다시 텐트 속으로 .. 2023. 9. 25.
2박3일 백패킹 Tahoe Rim Trail-2일차 Gilmore Lake에서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밤을 새우고 텐트밖으로 나오니 조그만 강아지 한 마리가 곁으로 다가와 작은 소나무에 오줌을 갈긴다. '이 노무자슥이..'라는 소리가 나올려는 순간 강아지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제 텐트를 칠 때 '위로 올라가면 Lake View가 좋다'라고 하면서 우리 일행이 곁에 자리 잡는 것을 꺼려했던 백인 여자다. '관상은 과학' '생긴 대로 논다'라는 말처럼 덜 익은 땅콩같이 생긴 여자가 고약한 심뽀를 지녔다. 자기 땅도 아니고 백패커라면 누구나 텐트를 치고 밤을 보낼 수 있는 장소인데 먼저 자리 잡았다는 이유로 텃세를 부렸거나 동양인 4명이 자기와 가까운 곳에서 밤을 지내는 것이 마음에 안 들어 View가 좋다는 말로 멀리 떨어지 있길 원했던 것 같.. 2023. 9. 23.
2박3일 백패킹 Tahoe Rim Trail-1일차 California 주(州)와 Nevada 주(州) 경계에 Lake Tahoe가 있다. 시에라 네바다 산맥에 있는 담수호(淡水湖)로 북미(北美)에서 가장 높은 해발 6,225피트(1,897m)에 위치한 호수(湖水)다. 면적 191.6 mi², 길이 34.75마일, 폭 11.81마일로 미국(美國) 5대호(五大湖) 중에서 가장 크며 Oregon 주(州) Crater Lake(594m)에 이어 두 번째로 깊은(501m/1,645피트) 호수이기도 하다. Lake Tahoe는 스키, 스노보드, 눈산행 등 겨울 스포츠는 물론 사계절 내내 캠핑과 하이킹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절경을 감상하면서 걸을 수 있는 Tahoe Rim Trail이 있다. (줄여서 TRT라고 함). 대략 10일에서 2주에 걸쳐 걷는 170.5.. 2023. 9. 22.
고통과 감동의 John Muir Trail 2016년 여름에 다녀온 존뮤어트레일(John Muir Trail), 고통과 감동의 16일도 이젠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Once in a life' 내 생애 한 번으로 끝인 줄 알았던 존뮤어트레일, 15파운드의 몸무게가 빠질 만큼 힘들었던 여정임에도 한번 더 걷고 싶은 이 욕망은 무엇이란 말인가? 쌓여가는 나이, 떨어지는 체력에도 불구하고 꿈틀거리는 욕망은 더 늙고 병들기 전에 한번 더 길을 나서라고 충동질한다. 새크라멘토 이사장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자며 John Muir Trail Topographic Map Guide ↑ 아래의 책을 선물했다 ↓ ************************************************ 클릭 ☞ 존뮤어트레일 1일차 보기 ***********.. 2017. 12. 30.
존 뮤어 트레일-16일차 길고 힘들었던 존뮤어 트레일 여정을 끝내는 날이다. Donahue Pass(11.073피트)를 내려와 시냇물이 흐르는 초원에서 야영을 했던 우린 John Muir Trail 마지막 날임에도 이슬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 길을 나선다. 말빨이 좋은 권박사가 Sunrise Campground에서 1박을 더하고 Little Yosemite Valley를 거쳐 Happy Isles로 가는 게 어떻겠냐며 내년에는 남행 코스에 도전해 보자고 꼬드긴다. 된장 헐.. 내가 5년 하고도 15일만 젊었어도 죤뮤어 트레일 남행코스만 도전하겠는가? 요세미티에서 Mt.Whitney를 갔다 다시 요세미티로 올라오는 왕복코스도 도전하고픈 마음이 있는데 써거질 세월은 지울 수 없는 깊은 흔적을 남겨놓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나이만.. 2016. 9. 1.
존 뮤어 트레일-13일차 소변이 마려워 일어난 시간이 새벽 2시, 헤드랜턴을 들고 텐트 밖으로 나오니 Ranger가 극찬했던 Chief Lake 밤하늘 풍경에 입이 벌어진다. 랜턴의 불빛이 필요 없다. 별은 수면 위로 쏟아질 듯 반짝이고, 사금(沙金)처럼 깔린 은하수는 숨을 길게 들이켜면 가슴속으로 빨려 들어올 것 같은데 하늘에 걸린 달은 처연하게 빛을 발하며 심장을 가를 것 같은 섬뜩함을 준다. 시골에서 태어나 자연을 벗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내가 넋을 잃고 바라볼 만큼 아름답기 그지없는 Chief Lake 밤하늘은 텐트밖으로 나온 이유를 잊게 한다. 누군가 내게 '존뮤어 트레일은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존뮤어 트레일은 자연의 소중함을 알고,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주.. 2016. 8. 27.
존 뮤어 트레일-12일차 간밤에 짠맛이 강한 스팸과 정어리 통조림을 안주삼아 소주를 마신 탓인지 갈증이 난다. 머리맡을 더듬어 물병을 찾아 물을 마시고 시간을 보니 04시 15분. 평상시 기상시간보다 15분이 빠르다.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텐트 밖으로 나오니 이사장과 권박사도 얼굴을 내밀며 '굿모닝!' Muir Trail Ranch에서 공급받은 즉석 떡국에 누룽지를 더 보태 식사를 마치고 05시 50분 길을 나선다. 한국마켓에서 판매하는 즉석 떡국은 다른 음식에 비해 무게는 더 나가지만 30년의 미국생활에도 변하지 않는 입맛 때문인지 간간한 국물과 부드러운 떡 조각은 그동안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내게 많은 도움을 준다. 떡국을 부칠 땐 무게와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종이그릇은 제거하고 비닐봉지에 담긴 떡과 수프만 바켓에 .. 2016. 8. 26.
존 뮤어 트레일-11일차 텐트, 신발, 슬리핑 백.. 모든 게 젖었다. 대충 물기를 말린 후 출발하자는 권박사의 제안에 따라 마르길 기다려보지만 생각처럼 쉬이 마르지 않고 새카맣게 몰려드는 모기떼의 공격에 두 손은 물린 데를 긁느라 때려잡느라 바삐 움직인다. 냄새가 싫어서 사용을 자제했던 모기약을 온몸에 뿌리고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배낭을 꾸려 출발을 서두른다. 공급받은 음식으로 가득 채워진 곰통과 젖은 텐트, 침낭, 옷가지, 소주 2팩과 통조림을 넣은 배낭은 50파운드가 넘는 것 같다. 제길 헐..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젯밤에 두 사람을 불러내서 억지로 소주와 통조림을 먹여서 없애야 했는데.. 50파운드가 넘는 무게를 짊어지고 하루종일 걸어야 한다는 중압감은 출발도 하기 전에 기운을 빼버린다. 아침 8시, Senge.. 2016. 8. 25.
존 뮤어 트레일-5일차 꿈에 El Dorado Hills에서 Sushi Restaurant을 경영하는 최사장을 본다. "형님, 몸은 괜찮으세요? 내일 Onion Valley로 위문공연 갈게요" 곁에 있던 최사장 와이프도 한마디 거든다. "오빠! 불고기 맛있게 재워서 가져갈게요" "제수씨. 달콤하고 매콤하게 재워서 가져오세요"라고 말하려는 순간 아침 일찍 Forester Pass를 넘기 위해 4시 30분에 맞춰놓은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뭔가를 끓여 먹고 떠날 준비를 해야 하는데 먹을 수도 없거니와 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 안 먹으면 걷다가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아 뜨거운 물에 미숫가루를 풀어 마시니 속이 조금 진정되는 느낌이다. 옆에서 텐트를 철수하는 이사장에게 간밤의 꿈 이야기를 해주니 감탄사를 연발한다. 두 분의 정이 오.. 2016. 8. 19.
하이시에라 트레일-7일차 맥주를 기대하며 11.1마일을 걸어 도착한 Bearpaw Meadow 매점에서 갈증을 해소하지 못한다. 먼저 도착한 일행은 맥주캔을 들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늦게 도착한 나와 마눌님, 오교수가 맥주를 사고자 하니 주인인지 종업원인지 모를 녀석이 하이커들이 예약한 Dinner를 준비하느라 바쁘다며 30분 후에 오란다. 맥주가 고픈 우리에게 1분의 시간을 내서 판매할 수 없을 만큼 바쁜 것 같지 않은데 쓸데없는 꼬장을 부린다. 된장 헐.. 칼자루 쥐고 있는 놈이 바빠서 못 팔겠다는데 어쩌겠는가? 멱살을 잡고 팔라고 할 수도 없는지라 거친 말 한마디를 뱉은 후 Bearpaw Meadow 매점에서 0.1마일 떨어진 High Sierra Camp로 가서 백패킹 마지막 밤을 준비한다. 텐트 정리를 마친 오교수가 .. 2016. 8. 14.
하이시에라 트레일-6일차 백패킹을 시작한 지 엿새째, 6월 25일(토) 아침 6시경에 현관문을 나섰으니 집을 떠나온 게 어느덧 7일이 되었다. 아빠를 좋아하는 개딸 Cherry가 보고 싶고 두 아들이 보고 싶다. 냉수에 보리밥을 말아서 된장에 풋고추를 찍어 먹고 싶다. 냄비에 마늘 한 줌 넣고 토실한 닭 한 마리를 푹 삶아서 뜯으며 시원한 쏘맥을 마시고 싶다. 끓는 물을 부어 간편하게 먹는 건조식품만 먹다 보니 갖가지 반찬과 술 생각이 난다. 오늘 목적지인 Bearpaw Meadow에는 백패커들을 위한 매점이 있고 그곳에선 맥주도 판다는데 도착하는 즉시 맥주를 사서 마눌님과 건배한 후 단숨에 들이켜야겠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짜릿하다. 사람의 욕심이란 게 끝이 없는지 그곳에서 삼겹살 구이와 소주도 판매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2016. 8. 13.
하이시에라 트레일-5일차 High Sierra Trail Backpacking 5일 차인 6월 30일은 11.6마일(18.6km)을 걸어야 한다. 9.160 ft에 위치한 Funston Meadow에서 10.400 ft까지 올라간 후 다시 9.560 피트 지점으로 내려가 Big Arroyo Creek 옆에 있는 Campground에서 1박을 하는 일정이다. 10.400 ft의 고도는 별거 아니지만 그 지점까지 가는 트레일은 경사가 심하고 길이 험하다. 게다가 전날 비에 젖은 옷가지가 담겨있는 배낭의 무게는 천근이라도 되는 것 마냥 어깨를 짓누르며 압박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비에 흠뻑 젖었던 마눌님이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과 발에 물집이 잡혀 고통이 심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하겠다는 일념으로 버텨주는 것이다. 시냇.. 2016. 8. 12.
하이시에라 트레일-4일차 지난 사흘간 몸은 힘들어도 별 문제가 없던 하이시에라 트레일 백패킹은 네 번째 날 곤욕을 치른다. Junction Meadow를 출발해 8마일(12.8km)의 내리막을 걸으니 물이 흐르는 계곡은 Kern River로 변하고 온천물이 강아지 오줌 줄기 같은 두 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Kern Hot Spring이 있다. 점심식사 후 Kern River에 들어가 물놀이를 겸해 땀에 찌든 몸을 씻는다. 겨우내 쌓였던 눈이 녹아서인지 물이 차갑다. 콘크리트 구덩이에 담긴 온천물에 몸을 데워준 후 발바닥 물집 때문에 걸음이 느린 마눌님을 앞세워 소프트 엔지니어 미스터 정과 함께 일행보다 먼저 출발한다. 출발하기 전 리더인 미스터 박은 오늘 묵을 예정인 Camping spot은 말똥이 많고 냄새가 심해 사람들 리뷰.. 2016. 8. 11.
하이시에라 트레일-3일차 Chicken Lake에서 Crabtree Meadow까지 14.4마일(약 23km) 이 힘들었는지 저녁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텐트 속으로 들어갔던 우린 아침이 되자 누구랄 것도 없이 아고고! 아고고! 곡(哭) 소릴 내면서 텐트밖으로 나온다. 얼굴은 누렇게 뜨고 부었다. 하이시에라 트레일 백패킹을 계획하고 리드하는 Sacramento, CA 에서 건축일을 하는 미스터 박이 오늘은 8.4마일 힘들지 않은 길이니 천천히 식사를 하고 여유 있게 출발하자고 한다. 힘들지 않다는 말에 마음의 여유가 생겼는지 농담을 주고받으며 식사를 마치고 마실 물을 정수해서 물병에 담는다. 어느 모임에서나 농담을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화기애애 한 분위기가 된다. 언어학을 전공하고 몬트레이 국방대학원에서 미군들에게 한국어를 가르.. 2016. 8. 10.
하이시에라 트레일-2일차 전날 초저녁부터 침낭에 들어간 우린 아침 식사를 마친 후 걸음을 재촉한다. Chicken Lake에서 두 번째 숙영지인 Crabtree Meadow까지 14.4 마일(약 23km), 무거운 백팩을 메고 오름과 내리막을 반복해서 걷다 보니 발바닥은 불에 덴 듯 뜨겁고 무릎이 시큰거린다. 된장 헐.. 이게 뭐 하는 짓인가? 돈과 시간을 없애가며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Once in a Life. 일생에 한번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성취욕 때문일 것이다. 존뮤어 트레일 도전에 앞서 체력과 지구력을 시험해 본답시고 의욕만 앞세워서 High Sierra Trail에 도전한 것을 잠시 후회하며 입속으로 Once in a Life를 되뇌이며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행의 길을 거친 숨을 내뿜으.. 2016. 8.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