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사흘간 몸은 힘들어도 별 문제가 없던 하이시에라 트레일 백패킹은 네 번째 날 곤욕을 치른다. Junction Meadow를 출발해 8마일(12.8km)의 내리막을 걸으니 물이 흐르는 계곡은 Kern River로 변하고 온천물이 강아지 오줌 줄기 같은 두 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Kern Hot Spring이 있다. 점심식사 후 Kern River에 들어가 물놀이를 겸해 땀에 찌든 몸을 씻는다.
겨우내 쌓였던 눈이 녹아서인지 물이 차갑다. 콘크리트 구덩이에 담긴 온천물에 몸을 데워준 후 발바닥 물집 때문에 걸음이 느린 마눌님을 앞세워 소프트 엔지니어 미스터 정과 함께 일행보다 먼저 출발한다. 출발하기 전 리더인 미스터 박은 오늘 묵을 예정인 Camping spot은 말똥이 많고 냄새가 심해 사람들 리뷰가 안 좋으니 근처에 텐트칠 만한 곳이 있으면 자리를 잡으라고 한다.
음악을 들으며 목적지 근처에 거의 온 것 같은데 하늘이 먹구름으로 덮이면서 번갯불이 번쩍하고 고막이 터질 듯 한 천둥소리와 함께 장대비가 쏟아진다. 느닷없이 퍼붓는 비는 배낭을 풀어 비옷을 꺼내기도 전에 온몸을 적시고 만다. 어제처럼 잠시 지나가는 비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빗방울은 멈추지 않고 엄지손톱만 한 우박을 섞어 줄기차게 퍼붓는다.
모자를 썼는데도 머리를 강타하는 우박에 통증을 느낀다. 마눌님과 나는 꼼짝달싹 못 하고 나무 밑에서 하늘의 처분을 기다리는 처량한 신세가 된다. 쏟아지는 비를 아랑곳하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엔지니어 미스터 정이 트레일 바로 밑 계곡옆에 텐트를 칠만 한 평지가 있다면서 그곳에 자리를 잡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흠뻑 젖은 마눌님을 보니 입술은 파랗고 몸은 떨고 있다.
저체온증으로 큰일이 생길 수 있겠다 싶어 미스터 정이 얘기한 평지에 텐트를 치고 마눌에게 몸의 물기를 닦고 옷을 갈아입으라고 재촉한다. 텐트 안에 가스버너를 켜서 온기를 더해주고 주변 지형을 살펴보니 다행히 눈 녹은 물과 비로 인해서 계곡이 범람했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짐승의 배설물도 있지만 곰의 것이 아닌 사슴 배설물이다.
비가 멈추면서 하늘은 환해지는데 물에 빠진 생쥐처럼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다. 텐트, 배낭, 옷가지, 신발.. 모든 게 젖었다. 조금 늦게 도착한 일행도 주변에 텐트를 설치하는데 리더인 미스터 박이 예정했던 Camping spot이 아니라면서 그곳으로 가야 한다고 뻘소릴 한다. 본인 입으로 Camping spot은 리뷰가 안 좋으니 괜찮은 곳이 있으면 자릴 잡으라고 했던 녀석이 고집을 피운다.
본인은 비가 쏟아지자 동굴 속으로 몸을 숨겨 비를 안 맞았다고 자랑질을 하면서 흠뻑 젖은 채 텐트설치를 완료한 우리에게 자리를 옮겨야 한다고 고집을 피우니 싸대기를 올려부치고 싶을만큼 화가 치민다. 가고 싶으면 너 혼자 가라고 내지르고 비에 젖은 나뭇가지를 주워와 어렵사리 불을 피워 젖은 옷가지를 말려보지만 옷은 쉽게 마르지 않는다.
걱정이 태산이다. 마눌님이 저렇게 비를 맞았으니 덜컥 아프지는 않을까? 젖은 옷가지는 배낭의 무게를 15파운드쯤 더할 텐데 내일 걸어야 하는 길은 경사가 심해서 무거운 배낭을 메고 그 길을 어떻게 올라가야 할지 걱정이다. 앉아서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될 대로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텐트에 들어가 잠을 청한다.
텐트를 쳤던 Junction Meadow에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
외나무다리를 건너고.. ↓
흐르는 계곡 물은 Kern River로 바뀌며 중가주 곡창지대 젖줄이 된다 ↑ ↓
구름이 몰려온다. 비를 부르는 먹구름이... ↓
Kern River ↓
Kern River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는 오교수 ↓
트레일에 피어있는 이름 모를 야생화는 나를 반겨준다 ↑
Kern River를 건너는 나무다리 위에서 마눌님과 소프트 엔지니어 미스터 정 ↓
스마트폰에서 동영상 보기 ☞ https://youtu.be/7NZ9mxnkH8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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