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어제가 설이었지만 17시간이 느린 이곳 California는 오늘이 설이다. 나는 지금 겨울 치레를 하는지 며칠째 기침감기에 시달리며 설을 맞이했고, 오래전 설날 세상을 등진 친구를 떠올리고 있다. 그날 새벽 친구가 떠났다는 카톡 메시지는 내게 큰 충격을 주었고, 이후 설날이면 녀석과 함께했던 날들을 회상하며 그를 추모하고 있다.
지병으로 고생하던 친구가 명절인 설날 세상을 등졌다는 사실, 그리고 녀석이 선택했던 삶의 마지막은 내게 형언할 수 없는 충격이었고 슬픔보다는 당혹감이 앞섰다. 투병 과정에서 그가 남겼던 흔적들, 자신의 결말을 뻔히 알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모든 것을 오롯이 신의 뜻에 맡겼던 친구의 무력감이 생생하게 느껴져 가슴이 아팠다.
명절에 생을 마감해야 했던 친구의 속내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 '우리 모두 먼저 간 녀석과 남은 가족을 위해 기도하자'라는 메시지를 보내며 황망했던 마음을 추스르려 했지만, 친구의 선택이 트라우마로 남은 것인지 지금처럼 몸이 안 좋으면 나는 녀석의 마지막을 생각하며 잠을 설치기도 한다.
친구가 떠나고 계절이 여러 번 바뀌면서 그때의 기억과 감정은 조금씩 무뎌졌지만, 설날이 찾아오면 어김없이 그날 새벽 카톡 메시지가 생각나 기분이 울적해지곤 한다. 만약 내가 친구와 같은 벼랑 끝 상황에 몰렸다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아 평상심(平常心)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그전까지 나는 인간의 유한(有限) 함이 두려웠다. 그리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이 허무하다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친구를 보내고 인간은 유한하기에 고통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나 역시 나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그날 새벽 휴대폰 화면을 가득 채웠던 친구의 소식은 지금껏 가슴 한구석에 남아 지워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설날의 카톡은 주변의 안부를 확인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까지 어떤 아픔도 가슴에 담지 않으리라 했지만 설은 내게 울적한 날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누군가의 만복(萬福)을 축원해야 하는 명절. 블로그를 방문하는 모든 분들이 병오년(丙午年)엔 더욱 건강하시고, 만사형통(萬事亨通) 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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