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녀가 만나 '사랑한다'라고 말을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에게 구속(拘束) 당하는 것이다. 사랑은 나의 의지가 미치지 않는 영역에서 내 삶의 질서를 재편하고, 내가 세워둔 가치관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의 무게는 한 사람의 우주가 다른 사람의 우주로 이주하면서 발생하는 존재론적(存在論的) 중력(重力)과도 같다.
철학적, 현실적으로 볼 때, 인간의 자아는 언제나 자신을 중심으로 회전한다. 그러나 사랑은 자기 중심성을 파괴한다.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 닿을 수 있는 것이 '나'였다면, 사랑은 가장 내밀한 나만의 장소에 타인(他人)의 자리를 마련하여 나보다 더 소중한 '너'를 정립(定立) 하는 것으로 인간이 행하는 가장 숭고한 자기 희생이다.
이처럼 진정한 사랑은 인생을 스쳐가는 것이 아니라 지배한다. 몸의 감각에서 시작해 마음의 파동(波動), 생각의 흐름까지 사랑이란 거대한 파도가 잠식(蠶食) 시킨다. 사랑의 시작은 꿈결 같은 황홀경으로, 때론 영혼을 갉아먹는 치명적인 열병으로 나타나면서 '나'라는 존재의 주권(主權)을 타인에게 기꺼이 양도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것을 예속(隷屬)이라고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사랑의 틀 안에 구속될 때 고립된 자아(自我)에서 해방되며, 시간의 관념마저도 무너뜨린다. 따라서 찰나(刹那)를 사는 인간이 천년(千年), 만년(萬年)의 사랑을 노래하는 것은 오만(傲慢)이 아닌 사랑이 가진 불멸(不滅)의 속성(屬性)인 것이다.
세월이 갈수록 육신은 쇠락(衰落) 하고 기억은 풍화(風化) 되지만, 존재의 심연(深淵)에 새겨진 사랑의 각인(刻印)은 시간의 흐름 바깥에 있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변할 수 없는 본질(本質)이 되어 영원이라는 시간의 지평선에 닿는다. 고로, 진정한 사랑이란 나를 희생함으로써 '너와 나'를 완성시키는 것을 말한다.

'끄적이는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몸이 기억하는 것들 (0) | 2026.01.31 |
|---|---|
| 새벽이 건네는 말 (0) | 2026.01.23 |
| 홀로 있음의 풍요 (0) | 2026.01.18 |
| 영원이란 이름으로 (0) | 2026.01.16 |
| 행복은 가까이 있다 (0) | 2026.01.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