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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이는 글

음악에 묻히는 날

by 캘리 나그네 2025. 11. 21.

 

잔뜩 찌푸린 무심한 초겨울의 하늘은 어김없이 빗줄기를 보내 추적추적 마음 한편을 적신다. 바람조차 숨을 고르며 멈춰버린 어린 시절 고향, 그 풍경 속에는 추수를 끝내고 할 일을 다한, 뼈대만 남은 들판의 허수아비가 찢어진 옷자락과 낡고 헤진 밀짚모자를 팽개친 채 청승맞게 비를 맞으며 젖은 흙 위에 널브러져 있다. 

 

오랜 시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영혼처럼, 그 기억은 내 안의 향수(鄕愁)를 건드린다. 그럴 때면 나는 컴퓨터를 켜고 시간의 결을 따라가버린 음악 속으로 빠져든다. 60년, 70년, 80년대에 유행했던 팝송, 암담했던 시절에도 청춘(靑春)을 노래하던 7080 가수들의 목소리는 떨어지는 빗방울의 잔향(殘響)처럼 내 가슴 깊숙이 스며든다. 

 

빗소리와 함께 듣는 음악은 감정의 중심을 건드린다. 같은 장르의 음악을 듣다 지루해지면 익숙지 않은 클래식으로 바꾼다. 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음악은 노래하는 사람마다 전해지는 숨결과 떨림, 체온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날이 선 외로움도 햇볕 좋은 날 부는 바람처럼 흔적 없이 사라지게 한다. 

 

감정의 줄이 너무 처졌다 싶으면 귀청을 찢는듯한 락(rock) 음악으로 내 안의 분위기를 바꿔 놓기도 한다. 거칠게 파고드는 기타 소리, 드럼 소리가 마음속 얼룩진 곳을 긁어내는 것 같은 짜릿함을 준다. 그러나 그 변화는 잠깐의 폭풍(暴風)에 불과하다. 나는 다시 조용하고 애잔한 소리를 찾아 볼륨을 조금 더 높이고 헤드셋을 귀에 붙인다. 

 

섬세하게 짜인 반주, 투명하고 맑은 음색(音色)은 비가 동반하는 외로움을 달래준다. 울적함을 쓸어내면서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처럼 스며든다. 그러면서 나는 깨닫는다. 내가 음악 속으로 도망친 게 아니라 음악의 품에 안기고 있다는 것을.. 비 오는 날 듣는 음악은 세상을 잠시 묵음(默吟) 처리하고 새삼스럽게 나를 발견케 하는 힘이 있다.

 

유툽에서 동영상 보기 ☞ https://youtu.be/RL-mGAObmPI

 

2025년 11월 19일(수), 비가 멈춘 Mission Peak 아침 ↑ ↓

 

 

 

 

예년보다 일찍 시작된 우기(雨期)는  

San Francisco Bay Area 산하(山河)를 초록으로 물들이며 겨울속 봄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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