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다 보면 아무 일도 없는데 가슴이 허(虛)해질 때가 있다. 바쁜 하루 속에서 이유를 알 수 없이 마음 한편이 텅 빈 듯한 그 순간, 꿈에도 그리운 고향(故鄕)의 향기(香氣)와 풍경을 떠올린다. 바람에 섞인 짚단 냄새, 마당 귀퉁이에 쌓인 두엄 냄새, 소죽 끓이는 냄새, 저녁밥 짓는 연기 냄새, 장독대 항아리에 담긴 간장, 된장 냄새까지..
해 질 무렵, 누런 황소를 앞세운 열다섯 살 꼴머슴이 꼴망태를 내려놓을 때 저무는 햇살에 반짝이던 땀방울과 땀을 훔치던 정경(情景). 그때는 모든 것이 늘 보던 하루의 평범함이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왜 이렇게 그립고, 정겹게 느껴지는 것일까? 그것은 땅을 일구며 흙과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삶이었기 때문일 게다.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넉넉했던 그 시절(時節). 바람에도 흙냄새에도, 사람 사는 정(情)이 스며있던 고향. 수 십 년의 세월이 흘러 기억에서 지워질 줄 알았던 고향은 가슴이 허해질 때면 다시 생각나고, 휘황(輝煌) 한 도시의 빌딩 숲을 걸어도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울고 웃던 그 자리의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다.
따스한 어머니의 품 같은, 내 마음이 쉬어가는 고향은 왜 아직도 기억(記憶)에 뚜렷이 남아있는 것일까? 그것은 잊은 듯 살아가다 문득 보게 되는 저녁 햇살 같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잡을 수 없지만 언제나 나를 감싸주는 그 햇살 속에는 고향 사람들,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어 지금껏 고향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나를 멀리 데려간 지금에도 좁은 고샅길마다 남아 있는 고향의 추억(追憶)은 내겐 세상의 중심(中心)이다. 저녁 짓는 연기 사이로 들려오던 개 짖는 소리마저 그립고, 아이의 미소 같은 순수한 고향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나의 뿌리다. 나는 오늘도 고향의 온기(溫氣)를 못 잊어 새록새록 옛 추억을 되새기며 세월을 내려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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