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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이는 글

세월이 만드는 내 안의 빛

by 캘리 나그네 2025. 11. 7.

 

청춘(靑春)의 시절에는 젊음이 영원할 줄 알았다. 날이 갈수록 쇠약(衰弱) 해지는 부모님을 보면서 늙는 것이 싫었고, 몸이 쪼그라들고 신체 리듬이 떨어지는 늙음이 두려웠다. 지속될 것 같던 내 젊음은 세월 따라 속절없이 가버렸고, 늙지 않으려 노력했건만 모두에게 공평한 세월을 붙잡을 수 없어 속수무책(束手無策) 늙어버렸다. 

 

나이가 들어 늙으니 깨달은 것이 있다. 늙음은 낡음이 아니라는 것. 낡음은 닳아서 기능을 잃는 것이지만 늙음은 완숙미(完熟美)가 더해지는 것. 세월은 내게 경륜(經綸)을 주었고 심지(心志)를 단단하게 해줬다. 세월은 외관(外觀)을 망가뜨렸지만 마음과 정신을 다잡아 준 것이다. 그래서 주름진 얼굴은 내 삶이 적힌 한 권의 책과 같다. 

 

길을 걷다 보면 곱게 늙은 사람들을 마주친다. 그들의 행동은 굼뜨지만 눈빛과 미소에는 인고(忍苦)가 깃들어 있다. 세월을 적(敵)으로 생각하지 않고 친구처럼 맞이한 얼굴이다. 이제부턴 나도 거울 속 얼굴을 낯설어하지 않을 것이다. 주름살 하나하나에는 외롭고 힘들었던 이민생활을 견디며 살아온 내 인생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어서다. 

 

젊음이 한순간 타오르는 불꽃이라면 늙음은 어두운 길을 밝히는 등불과도 같다. 젊음의 불꽃은 화려하고 뜨겁지만 쉽게 사라지는 찰나(刹那)의 순간에 불과하다. 늙음의 등불은 밝지는 않지만 진솔(眞率) 한 삶과 경험이 담겨있다. 지금부터 나는 세월에 복종(服從) 하면서 누군가의 어두운 길을 비춰주는 은은한 등불이 되고자 한다. 

 

나는 오늘도 세월의 흐름에 순응(順應) 한다. 서두르지 않고, 후회(後悔) 하지 않고, 거역(拒逆)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마음을 비우고, 이해하고, 미워했던 사람들을 용서하는 법을 배운다. 나의 늙음이 등불이 되어 누군가의 길을 밝힌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막바지로 치닫는 인생길에서 나는 내 안의 빛을 밝히고 싶다.

 

2025년 11월 6일 미션픽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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