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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이는 글

종교가 없는 사람의 기도

by 캘리 나그네 2025. 11. 1.

 

나는 종교(宗敎)가 없다. 교회, 절, 성당, 어디에도 가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신(神)에게 의지하여 살기보다는 내 손으로 하루를 일구고, 내가 흘리는 땀을 보상받으며, 모든 것을 스스로 감당하며 헤쳐가는 나를 더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교는 나와 관계없는 것이고, 기도(祈禱)는 종교를 가진 사람들만의 언어(言語)쯤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 아내가 아플 때면 나도 모르게 기도를 한다. 특정한 신을 향해서 하는 기도는 아니지만 그 순간만큼은 절실하다. "아내가 건강하게, 나보다 더 오래 살게 해주세요." 그 말을 마음속으로 되뇌다 보면 이민(移民) 초기(初期)에 고생했던 아내 생각에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내 몸이 안 좋을 때도 기도한다. “지금 나를 데리고 가는 것은 괜찮지만, 고통 없이 데려가 주세요” 내게 다가올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떠안을 부담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 그들에게 치유하기 힘든 상처가 남지 않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내 삶의 마지막이 평온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기도를 하는 것이다. 

 

이런 소망(所望)을 비는 기도는 종교의 전유물(專有物)이 아닌 마음의 언어(言語)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은 절박한 순간이면 누구라도 기도를 한다. 그것은 본능(本能)이다. 자신의 무력함 앞에서 나약한 인간이 되기에 그 짐을 어디엔가 내려놓고 싶은 심정으로 기도를 하는 것이다. 누구에게 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기도가 신(神)에게 닿지 않아도 괜찮다. 기도는 사랑의 표현이고 마음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행위여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까 두렵고, 그 고통을 대신할 수 없을 때 하는 기도는 내 안의 사랑을 세상에 내어놓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가 없는 사람의 기도는 어쩌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절실한 기도일지도 모른다.

 

유툽에서 동영상 보기 ☞ https://youtu.be/nqiETVsFwTw

 

2025년 10월 21일, Purisima Creek Redwoods Open Space Preserve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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