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었을 때 나는 못생긴 추남(醜男)이 아닌 추남(秋男)이었다. 여자는 봄을 타고, 남자는 가을을 탄다고 하지만 나는 가을에 약하다. 매년 가을이 되면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묵직한 쓸쓸함이 올라온다. 떨어지는 나뭇잎만 봐도 울적해진다. 그래서 10월의 끝자락이 되면 가을의 마지막을 놓칠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해져 집을 나서곤 한다.
마치 누군가 내게 거절할 수 없는 부탁을 한 것 마냥 하릴없이 이곳저곳을 찾아 걷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올해의 가을이 나를 두고 허망(虛妄) 하게 가버릴 것 같아서다. 그것은 외로움과는 다른 감정이다. 적당히 온기가 있는 햇살, 물든 나뭇잎, 저물어가는 10월의 바람이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느낌, 그리고 움직일 수 있음이 좋다.
가을의 끝자락이 오면 왜 이렇게 마음이 혼란스러워지는 것일까? 세월을 따라가는 것들이 원망스럽다. 사람, 햇살, 풍경은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 시간이 그것들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떠나는 것들을 붙잡고 싶다. 가을이 슬픈 것은 머지않아 모든 것들이 떠나가기 때문이다. 10월이 가고 난 후 얼굴을 스치는 초겨울의 차가움도 싫다.
흩어지는 구름이 내 안의 허무(虛無)를 가져간다. 멈추지 않는 시간은 세월이란 이름으로 지나가고, 그 속에서 나는 가는 세월을 붙잡을 수 없기에 오늘을 더 많이 사랑할 것이다. 겨울이 미뤄지고, 이 가을이 더 길어졌으면 좋겠다. 나는 오늘도 10월의 끝자락을 붙잡고 싶어 멈추지 않는 시간 속을 걸어가고 있다.
유툽에서 동영상 보기 ☞ https://youtu.be/-KhB-l57oO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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