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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이는 글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

by 캘리 나그네 2022. 8. 18.

 

낄끼빠빠,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를 줄인 말로 어떤 모임이나 대화에 눈치껏 끼어들거나 빠져야 한다는 뜻의 신조어(新造語)다. 또는 분위기 파악을 잘해서 융통성(融通性)있게 욕먹지 않을 행동(行動)과 처신(處身)을 하라는 의미도 포함되며, 나이 먹었다고 자신의 생각을 강요(強要)하거나 간섭(干涉)하면서 꼰대 짓하는 사람에게 젊은이들이 하는 말이기도 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낄끼빠빠’만 잘해도 욕(辱) 먹을 일은 없을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반드시 필요한 지혜(智慧)가 ‘낄끼빠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잘 알고 있는 내가 ‘낄끼빠빠’를 잘못해서 구설(口舌)에 올라 온갖 욕(辱)을 들었던 적이 있다. 2016년 봄, 나하 곤 전혀 상관이 없는 일에 끼어들어서 인생(人生)에 한 줄 흑역사(黑歷史)를 남긴 것이다.

 

그 당시 신뢰(信賴)하고 친했던 사람의 간곡한 부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개입(介入)하게 되었지만 '낄끼빠빠'의 지혜(智慧)를 간과(看過)하고 처신(處身)을 잘못했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사연인즉슨 이렇다. 2016년 초,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활동하는 등산동호회에서 회원들 간에 갈등이 있었다. 동호회 활동을 중단해서 사정을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던 내게 같은 동네에 살면서 몇 년 동안 연락 한번 없던 부부(夫婦)가 불쑥 집으로 찾아와서 그간에 있었던 이야기를 주절거리며 개입(介入)해주길 원했다.

 

2009년에도 그런 갈등(葛藤)과 분열(分裂)이 있었기 때문에 두 번 다시 개입하고 싶지 않다고 했더니 내가 신뢰(信賴)하고 친했던 사람을 앞세워 거절할 수 없게 한 것이다. 결국 '낄끼빠빠'의 지혜를 망각(忘却)하고 간과한 불찰(不察)로 산악회는 분열(分裂)되었고, 간(肝)이라도 빼줄 듯 알랑거렸던 부부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과 몰래 Lassen Peak을 다녀왔고, Mission Peak 야간산행을 할 때 곁으로 다가온 여자가 '제이엠티 의리 변치 말자'라고 뻘소리를 했던 것이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 천당을 가든, 지옥을 가든 나하곤 상관없는 일이고 상관할 바도 아니다. 자기 돈 들여서 자기 발로 가는데 이래라저래라 간섭할 권한도 그럴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인 줄 뻔히 알고 있으면서 몰래 다녀와서 '의리 변치 말자'라고 뻘소리를 하는 것은 요세미티에 서식하는 곰들이 부랄을 흔드는 소리와 같은 것이다.  

 

내가 ‘낄끼빠빠’를 잘하면서 살아온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분별(分別) 없이 아무 때나 끼어들었던 적도 없다. 누군가에게 '낄끼빠빠를 할 줄 알아야지'라고 비아냥거렸던 적도 없다. 나이와 경험을 앞세워 강요하거나 간섭하는 꼰대 짓을 싫어하는 내가 2016년에 있었던 흑역사(黑歷史)를 말하는 것은 ‘낄끼빠빠’는 눈치가 있고 없음의 문제이자 염치(廉恥)의 척도(尺度)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
이미지 출처/KBS2 해피투게더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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