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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이는 글

이낙연과 동아일보

by 캘리 나그네 2021. 1. 14.

이미지 출처/이낙연 대표 페이스북 

 

 

과거 정론(正論)을 지향(志向)했던 동아일보가 조중동 찌라시로 불릴 만큼 극단적 수구언론(守舊言論)으로 변하게 된 것은 2001년 '국민의 정부'에서 실시했던 언론사 세무조사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국세청(國稅廳)의 세무조사(稅務調査)를 받던 중 동아일보 사주(社主) 김병관 회장 부인이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아내의 죽음이 세무조사를 한 '국민의 정부' 탓이라고 생각한 김 회장이 그때부터 신문 편집(新聞編輯)에 간섭을 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자유언론(自由言論)의 기치(旗幟)를 수행하던 동아일보는 서슬이 퍼렇던 박정희 유신독재(維新獨裁)에도 비판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 연유로 박정희 정권은 1974년 겨울, 동아일보 광고주들에게 광고를 해약(解約)하게끔 압력을 넣었고, 광고지면(廣告紙面) 전체가 백지(白紙)로 나가는 이른바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라고 했던 초유(初有)의 언론탄압(言論彈壓)이 발생했던 것이다.

 

광고수입(廣告收入)에 의존하는 신문사가 백지 광고를 내는 것은 엄청난 타격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동아일보는 일주일 치 분량의 광고를 예약받았었는데 순식간에 광고가 빠지면서 그 지면을 채울 여건이 안되자 백지 광고를 냈던 것이고, 독자(讀者)들은 사비(私費)를 털어서 백지 광고면을 한 줄이 들어갈 만한 크기로 쪼개서 개인 광고를 내기도 했다. (필자도 친구들과 돈을 보태서 두 번에 걸쳐 한 줄 광고를 냈던 적이 있다.)

 

1985년 동아일보는 이른바 서울대 프락치 사건에 연루(緣累)되어 실형(實刑)을 선고받고 수감(收監)중이던 유시민(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쓴 항소이유서(抗訴理由書)를 단독으로 보도해서 유시민을 전국적 스타로 만들어 준 신문이기도 하다. 훗날 유시민은 동아일보는 글쟁이인 자신에게 아주 특별한 언론이었다고 회고했다. (클릭 ☞ 항소이유서 보기)

 

유시민이 쓴 '거꾸로 읽는 세계사(1988년)'가 교양서적(敎養書籍)임에도 불구하고 100만 부가 팔릴 만큼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것은 항소이유서를 보도해서 유시민을 유명인사로 만들어 준 동아일보의 공로가 컸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언급한 특별한 언론이라는 표현은 과장된 수식어(修飾語)는 아닌 것 같다.

 

외환위기 때 독일에서 귀국한 유시민에게 지면(紙面)을 내준 것도 동아일보였다. 1998년부터 2000년, 백분토론에 출연하기 전까지 동아일보와 주간동아에 기명(記名)으로 칼럼을 연재하면서 대중(大衆)과 소통(疏通)하며 함께 호흡(呼吸)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동아일보의 배려(配慮)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유시민뿐만이 아니다. 많은 민주인사(民主人士)들도 동아일보에 특별한 감정(感情)을 갖고 있을 것이다. 5.18 광주 민중항쟁이 발생하자 전두환 신군부에 항거(抗拒)하는 의미로 5일간 사설(社說)을 싣지 않았으며, 전두환 군사독재의 종말(終末)을 알리는, 6월 항쟁(抗爭)의 도화선(導火線)이 되었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단독 보도한 신문도 동아일보였다.

 

동아일보가 족벌(族閥) 언론임에도 불구하고 독재 시절에 언론의 기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사주(社主) 일가(一家)가 조선일보와는 다르게 일선 편집국에 대한 간섭을 최소화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부인의 죽음으로 인해 증오심(憎惡心)이 가득해진 김병관 회장이 신문 편집에 간섭을 하면서부터 급속도로 수구화가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는 것이다.

 

요즘 이낙연 민주당 대표의 동아일보 재직 시절을 문제 삼는 사람들이 있다. 1979년부터 2000년 초(初)까지 동아일보에서 근무했던 이낙연 대표는 동아일보가 수구화 된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이낙연 대표가 재직하던 당시의 동아일보는 오히려 진보적 인사들이 칼럼을 연재할 만큼 역량(力量)과 균형(均衡)을 갖춘 중도언론(中道言論)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이낙연 대표 같은 개혁적이고 양심적인 중견기자(中堅記者)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낙연 대표를 비난하는 강XX 기자가 몸담고 있는 경향신문이야말로 부끄러운 역사를 가진 언론이라고 할 수 있다. 경향신문은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에는 유신정권에 부역했고, 전두환 독재정권 때는 전두환에게 부역했으며, 노태우 정권 때는 노태우와 재벌들에게 부역했던 신문이다.

 

경향신문이 진보적 언론이란 소리를 듣게 된 것은 1998년, 한화그룹이 경영에서 손을 떼고 사원주주제(社員株主制)를 시행한 이후부터인데 한화 시절에 채용되었던, 죽는 날까지 변하지 않을 수구 성향의 기자들이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는 말이 있듯이 이낙연 대표의 경력을 들먹이며 비난하고 있는 사람들은 누가 누구를 비난하는 것인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볼 일이다.

 

지름길을 모르거든 큰길로 가라.   큰길을 모르거든 직진하라.   그것도 어렵거든 멈춰 서서 생각해보라.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국민통합 21'의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사실상 정몽준으로 후보교체)를 요구하며 노무현 후보를 흔들던 당내 의원 그룹 후단협(후보 단일화 협의회)을 비판하면서 이낙연 대표가 했던 말이다.

 

 

 

Ralston Peak에서 보는 Pyramid Pe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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