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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이는 글

아픔을 웃음으로 승화시켰던 박지선

by 캘리 나그네 2020. 11. 6.

박지선 트위터 캡쳐

 

 

피부질환으로 TV에 출연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분장조차 할 수 없었던 개그우먼 박지선. 조명(照明)이 내리쬐는 곳에서는 서있는 것조차 힘들었다는 그녀는 외모(外貌) 지상주의(至上主義)를 추구하는 한국사회에서 자신의 얼굴을 빗댄 다음과 같은 말로 대중(大衆)을 격려하며 감동을 주기도 했다.

 

"나는 내 얼굴을 사랑한다. 나 자신조차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날 사랑해주겠느냐"

 

희극인(comedian)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직업이다. 하지만 본인의 몸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웃음을 준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박지선은 자신의 아픔도 웃음으로 승화시켜 대중에게 희망과 긍정의 에너지, 즐거움을 주었던 희극인이었기에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그녀의 죽음이 더욱 안타깝게 여겨지는 것이다.

 

박지선은 무대에서 남을 깎아내리는 개그를 한번도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많은 Comedian들이 사람을 비하하는 소재를 갖고 웃기기도 하지만, 그녀는 사람을 깎아내리지 않고 불쾌감과 피해를 주지않는 웃음의 원칙을 고수했다고 하니 새삼 그녀의 인간성이 돋보이는 것이다.

 

뛰어난 순발력과 군더더기 없는 재치로 대중에게 큰 웃음을 줬던 박지선. 얼굴 화장은 커녕 햇볕이 있으면 야외활동도 못하는 질병에 힘들어하는 그녀의 고통은 고스란히 엄마의 고통이 되어 가슴을 짓눌렀을 것이다. 그녀가 세상을 등진 것이 못내 안타깝지만, 딸에게 늘 미안한 마음으로 살았을 어머니의 죽음 또한 더없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제 영상으로 밖에 볼 수 없는 박지선. 그녀와 관련된 기사를 찾아봤다. 8년 전 한겨레 신문과 인터뷰한 기사다. (클릭 ☞ 쌩얼로 다닐 수밖에 없는 박지선의 사연) 그리고 박지선의 트위터 '멋쟁이 희극인' 링크를 걸어둔다. 그녀의 트위터에는 함께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있었던 재미있는 일상이 그대로 남아있다. (클릭 ☞ 트위터 '멋쟁이 희극인 박지선')

 

 

 

 

※ 아래는 한겨레신문 인터뷰 기사중 일부 발췌

 

“태어나서 고3 때 할머니 돌아가실 때까지 18년 동안 할머니와 한방을 썼어요. 손녀라기보다는 룸메이트였죠. 할머니는 침대를 쓰시고 저는 바닥을 쓰는데, 거동이 불편하실 때는 바로 제 얼굴에 넘어지기도 하셨어요. 제 비주얼의 8할은 할머니 엉덩이가 만들어주셨죠.(웃음)

 

다투기도 많이 다투고 좋은 일도 많았어요. 할머니께서 평소 ‘나 죽거든 서랍 속에 치부책을 열어봐라. 그러면 니가 눈물이 아주 쏙 빠질 거다’라고 하셨는데, 할머니 돌아가시고 찾아보니 진짜로 ‘애비가 만두을 사완은데 지선이가 다 빼서 머것다. 써글연(아비가 만두를 사왔는데 지선이가 다 뺏어 먹었다, 썩을 년)’ 같은 내용이 잔뜩 적혀 있었어요. 뭔가 감동적인 게 있을 줄 알았는데, 저랑 다툰 내용만 적어두신 거죠.(웃음)

 

<해피투게더>에 나가 그 사연을 소개한 다음 쉬는 시간에 울컥해서 울었어요. 개그맨 되기 전에 제가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분이 할머니예요. 지금도 오빠랑은 (할머니 목소리로) ‘지선아, 물 좀 떠다 다와(다오)’ 흉내 내고, 엄마랑도 ‘에미야~’ 부르면서 장난을 치죠. 분장을 못 하고 표정과 말투로만 연기해야 하는 제 입장에서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몰라요.” 

 

 

2015년 청춘페스티벌 캡쳐
2015년 청춘페스티벌 캡쳐
2015년 청춘페스티벌 캡쳐
2015년 청춘페스티벌 캡쳐
2015년 청춘페스티벌 캡쳐
2015년 청춘페스티벌 캡쳐
2015년 청춘페스티벌 캡쳐
2015년 청춘페스티벌 캡쳐
2015년 청춘페스티벌 캡쳐
2015년 청춘페스티벌 캡쳐
2015년 청춘페스티벌 캡쳐
2015년 청춘페스티벌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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