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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이는 글

아버지의 가을

by 캘리 나그네 2020. 10. 29.

 

음력(陰曆) 9월 2일에 태어나신 아버지의 가을은 부지깽이 힘이라도 빌리고 싶을 만큼 바쁜 계절이었다. 색 바랜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허름한 작업복 차림으로 황금빛 들녘을 설거지하는 농부(農夫)의 삶이 그렇듯 아버지는 수확의 계절 가을이 오면 풍요(豊饒)의 기쁨을 뒤로 하고 힘겨운 시간들과 씨름하면서 고난(苦難)한 삶을 살았던 분이다.

 

 

 

추석(秋夕)에 다녀간 자식들이 보름여 후 다시 고향집을 찾아오면 바쁠 텐데 뭐하러 또 왔느냐는 말씀을 하시면서도 입가에 웃음을 지으셨던 아버지는 생일 아침을 먹고 흩어지는 자식들에게 따놓은 감을 자루에 담아 주시곤 했다.

 

 

 

주홍색으로 변한 감을 볼 때면 아버지가 생각나고 철없던 시절 아버지 마음을 상하게 했던 일들을 후회한다. 아버지 말씀을 거역하고, 아버지를 싫어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왜 아버지를 멀리하고 싫어했을까?

 

 

 

두어 번 이사를 할 때마다 감나무를 심었다. 감을 좋아하는 이유도 있지만 가을이 영글어 갈수록 색이 변해가는 감을 보면서 고단한 삶을 살다 가신 아버지를 떠올리고 아버지께 저질렀던 불효를 기억하기 위해서다. 

 

 

 

코로나 사태로 모두 힘들어하는 2020년도 어김없이 가을이 왔다. Rent House에 살고 있는 Tenant에게 우기(雨期)가 시작되기 전 Rain Gutter를 청소하겠다는 이메일을 보낸 후 뒷마당에 있는 나무들의 가지를 솎아냈다. 낙엽이 쌓인 Rain Gutter를 청소하고 Yard를 정리한 후 버팀목을 받쳐줘야 할 만큼 가지가 찢어질 정도로 열린 감을 조금 따왔다.

 

 

 

감을 따가면 Tenant가 한마디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겠지만 몽땅 따온 것이 아니고 1/3정도만 따왔다. 그리고 집을 빌려준 것이지 나무까지 빌려 준 것은 아니다. Tenant가  Yard를 정리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매월 한 번씩 이메일을 보낸 후 방문해서 Gardening을 하기 때문에 세입자는 과일나무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감을 따다 떨어뜨려서 상처가 생겼다. 오늘은 요놈들은 깎아서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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