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아마추어 권투경기에 출전한 적이 있다. 글러브를 끼고 링 위에 올라 심판에게 주의사항을 들으며 싸울 선수와 눈빛을 교환하는데 이때 상대방의 눈에서 살기(殺氣)를 느끼는 경우가 있다. 시합도 하기 전에 상대 선수의 기(氣)에 쫄아버린 것이다. 이런 시합은 해 보나 마나 질 수밖에 없다.
기(氣)싸움에 져서 쫄아서 하는 시합인데 기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겠는가? 쫄아버린 상태에서 하는 경기는 백스텝으로 도망 다니며 한대라도 덜 맞고 3라운드 경기가 종료되길 바라거나 아니면 중간에 카운터 펀치 한방 얻어맞고 RSC(Referee Stop Contest)판정으로 지는 수밖에 없다.
추미애의 법무부와 윤석열의 검찰이 핫이슈가 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추미애는 윤석열을 어떤 존재로 인식하고 있을까? 추측하건데 추미애는 윤석열을 법무부(法務部) 산하( 傘下) 외청(外廳)의 수장(首長), 즉 자신의 지시(指示)와 감독(監督)을 받아야 하는 부처의 부하 공무원 중 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위계질서상 자신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사람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담 조국을 사퇴시킨 윤석열은 사시(司試) 선배이자 5선의 국회의원과 여당 대표를 역임한 추미애의 등장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단언컨데 긴장 그 자체였을 것이다. 추미애의 정치적 중량감은 윤석열이 범접할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추미애는 애초부터 윤석열에 대한 부담감, 긴장감은 아예 없었을 것이다.
장관에 임명된 추미애가 검찰인사를 앞두고 협의하기 위해 윤석열을 여러차례 불렀지만 안 갔다고 한다. 왜 안 갔을까? 윤석열이 상관인 추미애장관을 장기판의 졸(卒)로 봐서? 아니면 한번 엉겨 보려고? 아니다. 윤석열은 추미애의 기(氣)에 눌려서 안 간 것이다. 경기도 치르기 전에 추미애의 등장(登場)만으로 쫄아버린 것이다.
윤석열은 추미애를 상대로 인사문제를 협의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언론플레이와 자유망국당의 지원이라도 받아볼까 해서 안 가고 버팅겼던 것이고, 추미애는 윤석열이 자신을 찾아오지 않을 것을 예감(豫感)하고 알리바이를 확보하는 차원에서 여러 번에 걸쳐 법무부를 방문해서 인사문제를 협의하라고 연락을 했던 것이다.
검찰 인사 후 기레기 언론과 자유망국당에서 '검찰 학살' '팔다리를 잘랐다'라고 말이 많아지자 국회 법사위원회에 출석해서 "검찰 총장이 오히려 내 명을 거역한 것이다. 와서 의견을 내라고 했지만 몇 시간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고 오히려 인사 안을 제3의 장소로 갖고 오라는, 있을 수 없는 요구를 했다"
"검찰총장은 특정한 자리나 사람, 인사의 기준에 대해서 또 인사의 범위에 대해서 이런 의견을 낼 수는 있는 것이지만 모든 자리에 일일이 간섭할 권한은 없다. 대통령의 인사권한에 대해서 일일이 한 사람 한 사람 의견을 내겠다 하는 것은 법령상에 근거가 없는 인사권 침해다"라고 잘라 말하며 윤석열의 태도를 비판하면서 검찰의 반발에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번 인사에서 윤석열은 추미애의 정무능력에 완패했다. 윤석열은 허수아비가 된 것이다. 만약 내가 윤석열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이럴 경우 미련없이 사표를 던지고 '고향 앞으로' 했겠지만, 가오를 중요시하는 윤석열은 대통령의 해임을 기다리며 순교자가 되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남은 임기동안 버티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했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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