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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이는 글

태기산 설경(雪景)

by 캘리 나그네 2023. 1. 13.

태기산
이미지출처/김태은 페이스북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절(時節)이 있는가 하면 기억하기 조차 싫은 시절도 있다. 내가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절은 봄이면 하교(下校) 길에 달콤했던 풀꽃('삐비'라고 불렀음)을 뽑아먹고, 여름이면 저수지에서 물장구를 치고, 가을이면 들판의 메뚜기를 잡아 참기름을 두른 냄비에 볶아 먹고, 겨울이면 꽁꽁 언 저수지에서 썰매를 지치던 어린 시절이다.

 

반면 젊음을 다시 준다 해도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 있는데, 그것은 태기산(泰岐山) 정상(頂上)에서 통신병으로 군생활(軍生活)을 하던 때다. 그 당시 태기산의 겨울은 세상과 고립된 설국(雪國)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두 번의 겨울을 보내면서 얼음물로 플라스틱 식판을 닦았고, 엉덩이를 찌를 듯이 솟아오른 화장실 똥탑을 깨뜨려 부수며 속된 말로 '조뺑이' 치는 군생활을 했었다.  (클릭 ☞ 태기산 글 보기)

 

태기산은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과 둔내면, 평창군 봉평면을 경계로 하는 해발고도 1,261m의 산으로 원래 이름은 덕고산(德高山)이었다. 삼한시대 진한의 마지막 왕인 태기왕이 이곳에 산성(山城)을 쌓고 신라의 박혁거세와 격렬하게 최후의 결전을 벌였다 해서 태기산이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태기산에서 발원하는 갑천도 원래 이름은 주천이었으나 태기왕이 박혁거세의 추격을 받아 산에 들어올 때 더러워진 갑옷을 씻었다 하여 갑천이라고 한다.

 

태기산 정상에는 통신벙커와 민간인이 근무하던 KBS 송신탑이 있었다. 산 중턱에는 양구두미재라 불리는 고갯마루가 있고, 체신부에서 운용하던 '마이크로웨이브'라고 불렀던 중계소(中繼所)가 있었다. 중계소를 관리하던 사택(舍宅)에는 태기산 정상으로 출퇴근하던 방위병과 그의 부모님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태기산 군인들을 상대로 라면 부스러기로 만든 '라면땅', 오리온 제과에서 생산했던 '웨하스', 마시고 나면 골 때리는 강원도 명물 경월(鏡月)소주 등을 판매했다.

 

지금은 없어졌겠지만 양구두미재에서 왼쪽 큰길(우리 부대에서 만들었던 길)을 따라 정상으로 가다 보면 모의통신소(模擬通信所)가 있었다. 안개가 끼거나 흐린 날 태기산 정상이 안 보일 때 적기(敵機)가 착각하여 모의통신소를 공습(空襲)하도록 유인(誘引)하는 목적으로 목재(木材)를 이용해서 모형군인과 모형기관포, 모형안테나를 만들어 설치했던 곳이다.

 

봄이 오면 눈에 쌓여 있던 모의통신소가 허물어졌는데, 우린 보수공사를 하기 위해 야전삽을 들고 내려갔고, 가위바위보를 해서 2명의 행동대원을 뽑아 주머니에서 닳고 있는 돈을 각출(各出)해서 경월(鏡月) 소주를 사와 월동(越冬) 부식(副食)으로 남아있던 멸치볶음과 쇼트닝(shortening)에 군용건빵을 튀기고 염장(鹽藏) 미역을 볶아서 그것을 안주삼아 회식을 했었다.

 

태기산의 추위는 혹독(酷毒)했다. 눈이 오지 않는 날에도 밤에 부는 바람으로 나뭇가지에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상고대(霜高帶) 꽃이 피었고, 내려다 보이는 주변(周邊)의 설경(雪景)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군인들이 산 정상을 차지하고 있어서 등산객들이 꼭대기까지 오를 수는 없겠지만, 눈 덮인 태기산은 대한민국 어느 명산(名山) 못지않은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주는 산이다.

 

 

태기산 설경
이미지출처/김태은 페이스북

아침에 눈을 뜨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상고대(霜高帶)가 나무 가지마다 꽃을 피우곤 했다.  ↑  ↓

 

태기산 설경
이미지출처/김태은 페이스북

 

태기산 설경
이미지출처/김태은 페이스북

 

태기산 설경
이미지출처/김태은 페이스북

 

태기산 설경
이미지출처/김태은 페이스북

 

태기산 설경
이미지출처/김태은 페이스북

 

태기산 설경
이미지출처/김태은 페이스북

과거엔 없던 풍력발전소가 낯설게 느껴진다  ↑  ↓

 

태기산 설경
이미지출처/김태은 페이스북

 

이미지출처/김태은 페이스북

 ↑ 기억을 더듬어 보면 상고대가 피어있는 나무사이로 전선이 있는 길처럼 보이는 것이 정상으로 통했던 급경사 같다.

 

가족이 면회를 오면 둔내면 소재지에 있는 '서울여관'에서 묵었다. 아래 지도의 '화동리'라고 쓰인 곳이 버스 종점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화동 2리에서 빨간 선을 따라 올라가면  '마이크로웨이브'라고 불렀던 체신부 중계소가 있었고, 양구두미재 왼쪽 파란색 별표 근방에 모의통신소가 있었던 것 같다. 우린 이곳을 지나쳐 경사가 심한 길을 올라 태기산 통신소로 갔다. 

태기산
이미지출처/횡성군 홈페이지 청일면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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