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시(詩)를 한 편 선택하라고 하면 '서시(序詩)'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다. 통계에 의하면 일반인들은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 나태주 시인의 '풀꽃' 등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시(詩)를 쓴다는 사람들 열에 여덟은 '서시'를 꼽는다고 한다.
윤동주 시인(詩人)은 떳떳한 삶을 살겠다는 다짐과 자신의 고뇌(苦惱)를 담아 단순하고 간결한 내용과 언어로 '서시(序詩)'를 썼다. 이 시는 국문학(國文學)을 대표하는 명시(名詩)로 유고 시집(遺稿詩集)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되었다. 1941년 11월 20일 발표했던 시의 원문(原文)은 다음과 같다.(괄호 안은 수정)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르러(우러러)
한점(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안테(나한테) 주어진 길을
거러(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대장동 의혹으로 측근들이 구속돼 사법 당국(司法當局)의 수사를 받고, 대장동 몸통으로 의심받고 있는 이재명이 페이스북에 "저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습니다."라고 적었다. 민주화 운동을 하다 감옥에 간 것도 전과(前科)라고 했던 패륜잡범(悖倫雜犯)이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강아지가 풀을 뜯어먹다 사레들린 소리와 같은 것이다.
일제 강점기(日帝強占期) 치하(治下)에서 감수성(感受性) 많은 스물네 살의 청년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부끄러워하고 괴로워했던 것인데, 패륜잡범 따위가 '저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이 윤동주 시인의 삶을 살았다고 하는 것과 같다. 이처럼 뻔뻔하게 민족시인(民族詩人)의 시를 인용해서 변명하는 뽄새를 보면 이재명의 인간 됨됨이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이재명은 곤란한 처지를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구차(苟且)한 변명을 할 때면 어울리지 않는 말을 인용(引用)하거나 비유(比喩)해서 지껄이곤 한다. 대중(大衆)과 공감(共感)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인지 대중의 심리를 모르는 것인지, 엉뚱한 비유와 인용으로 또 다른 구설(口舌) 거리를 만들어 내는 것에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인간이다.
성현(聖賢)들에게 "당신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았는가?"라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할까? 프란체스코 교황(敎皇)은 부끄러움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마음을 열어 죄를 고백하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부끄러움을 느낄 때 감사해야 한다.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은 우리가 악을 받아들이지 않음을 의미하며 이는 올바른 것이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악(惡)과 불의(不義)를 마주하고 있는 인간은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은 악(惡)을 거부하고 불의(不義)와 타협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이 부끄럽다고 느낄 땐 세간(世間)의 도덕적 기준에 미치지 못했음을 인지(認知) 한 것이다. 떳떳하다고 자부했던 어제도 오늘을 시작하면서 되돌아봐야 한다. 그래야만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이 없다'라고 말할 수 있다.
짧은 생(生)을 살다 간 윤동주 시인은 자신이 쓴 시(詩)에 부끄러움을 얘기했다. 그래서 혹자는 시인을 일컬어 '부끄러움의 시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처럼 부끄러움을 표현했던 시인과 다르게 패륜잡범 이재명은 자신이 저질렀던 행위에 대해 진심으로 부끄러워하고 반성했던 적이 있었는지 묻고 싶다.
부끄러움은 양심(良心)에서 나온다. 한 점 부끄럼이 없다는 인간이 김 모 여배우와 공짜 오입질, 친형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 시도, 형수에겐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욕설을 퍼부었던 것인가? 나는 이재명이 윤동주 시인의 서시(序詩)를 읽어보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한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을 인용해서 씨부렸을 것이고, 그랬을 것이다에 혜경궁 손모가지를 걸어본다.
파란 하늘을 우러러보며 살아온 길을 뒤돌아 본다.
나는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아왔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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