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끄적이는 글

베푸는 마음

by 캘리 나그네 2021. 9. 4.

 

 

법정 스님은 마음을 비우는 것을 무심(無心)이라 하셨다. 따라서 빈 마음(無心)은 곧 인간(人間)의 본마음이고, 그 본마음 속에 무엇인가 채워져 있다면 그것은 본마음이 아니라고 했다. 마음을 비우고 있어야 인간과 인간 사이에 울림이 있는 것이고, 울림이 있으므로서 그 사람의 삶이 신선하고 활기가 있는 것이라고 하셨다.

 

스님의 말씀처럼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비운다는 것은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는 뜻으로  집착과 미련, 미움과 사랑, 욕망과 욕심을 없앤다는 것인데, 인심(人心) 조석지변(朝夕之變)이란 말처럼 사람의 마음이란 게 간사(奸邪)하기 그지없어 비우고 내려놓는 것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오이가 어찌나 큰지 내 발과 비교해봤다. 9인치 운동화를 신는 내 발보다 훨씬 더 크다

 

예전에 오이 세개가 주는 행복 이란 글을 포스팅한 적이 있다. 고압선 밑에서 밭을 일궈 농사를 짓는 이태리 이민자 Pat 씨가 체리와 산책을 하는 내게 오이를 따주고 호박도 따주면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오가는 길에 부담 없이 가져가라고 한 적이 있다.

 

 

 

하이킹 할 때 쓰는 햇빝 가리개 중절모에 오이를 담았지만 무거워서 들고 갈 수가 없다.

 

베풀어 주는 마음이야 더없이 고맙지만 주인이 없을 때 펜스(fence)를 넘어 밭으로 들어가서 오이나 호박을 따 가지고 오는 것이 내키지 않아 구경만 하면서 지나치곤 했는데, 체리와 밭 옆으로 지나가는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들고 가지 못할 만큼 많은 양의 오이를 따준다. 

 

 

 

어쩔 수 없이 마눌님께 전화해 데리러 오라고 한다.

 

'관상은 과학이다'라는 말처럼 얼굴이 무척 선하고 착하게 생긴 Pat씨는 집착과 미련, 미움과 사랑, 욕망과 욕심.. 등,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사람처럼 보인다. 2개월에 한 번씩 납부하는 물값이 $600불이 넘는다고 했는데, 비싼 물값이 아깝지 않은지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고, 이름도 기억나지 않을 내게 듬뿍듬뿍 베푸는 사람이다.

 

 

 

씻어놓고 보니 8개다 

 

2016년 여름, 존뮤어트레일을 같이 걸었던, 새크라멘토에서 덴탈 랩을 운영하는 이사장도 얼굴에서 보여주듯 마음이 착하고 선하며 베풀 줄 아는 사람이다. 남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여기는 고마운 사람인지라 (클릭 ☞ 존 뮤어 트레일 9일 차)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면 몇 개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왕복 4시간이 넘는 곳에 살고 있어 그럴 수 없는 것이 아쉽다.

 

 

 

그냥 날로 먹어도 맛있다. 껍질이 두꺼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부드럽고 연한 것이 농약을 안뿌리고 물과 햇볕으로만 키워서 그런가 보다.

 

오랜만에 이사장과 통화를 한 후 오이와 양파를 썰어 넣고 양념을 해서 국수를 말아먹는다. 물론 양념 맛이 2/3를 차지하겠지만 이처럼 신선하고 맛있는 오이냉국에 국수를 말아서 먹어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오이와 양파, 풋고추를 썰어 넣고 만든 냉국. 재료가 좋아서인지 더없이 맛이 좋다.

 

아름다운 꽃도 피었으면 시드는 게 정상이듯, 사람의 관계도 끝까지 이어갈 수는 없다. 나역시 마찬가지지만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좋은 인연으로 만났어도 모기 눈물만큼의 서운한 점이 있으면 가차없이 관계를 단절한다. 그래서 사람을 일컬어 간사하고, 이기적이고, 뒷통수 치는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던 장미꽃도 내년을 약속하며 시들어간다.

'끄적이는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풍산개  (0) 2021.09.15
가을이면 생각나는 생선 전어  (0) 2021.09.11
귀태(鬼胎) 이재명  (0) 2021.09.03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0) 2021.08.25
이재명은 합니다  (0) 2021.08.1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