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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이는 글

관상은 과학이다

by 캘리 나그네 2021. 6. 16.

Coyote Hills Regional Park(06-14-2021)

 

 

이 나이가 되도록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다 보니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파악할 수 있는 시야(視野)를 갖게 되었다. 사악, 비열, 음흉,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을 분별해 낼 수 있는 눈이다. '생긴 대로 논다'는 말이 있다. 내뱉는 말과 행동이 얼굴과 어울린다는 뜻으로 주로 부정적 의미를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관상(觀相)을 눈으로 보는 과학(科學)이라고 하는 이유다.

 

누군가 자신에게 좋은 관상을 가졌다고 하면 기분이 좋을 것이다. '예쁘다, 호감을 주는 얼굴이다'라는 말은 누구라도 기분을 좋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을 들여서 쌍꺼풀 수술을 하고, 턱뼈, 광대뼈를 깎고, 주름진 얼굴, 처진 피부를 당기거나 보톡스를 주입해서 피부를 탱탱하게 하는 시술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의느님은 사람이 갖고 태어난 기본 베이스와 상관없이 뼈를 깎고, 피부를 찢고 당겨서 얼굴을 바꿔주는 기술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의느님의 힘을 빌어 얼굴을 바꿨다고 해서 타고난 천성(天性)과 운명(運命)은 달라지지 않는다. 의느님은 얼굴을 바꿔주는 의술은 있지만 천성이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은 없기 때문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젊었을 때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재물(財物)과 인맥(人脈)이 없으면 출세할 수 없던 그 시절, 선생은 죽기 살기로 공부해서 과거시험에 응시했지만 번번이 낙방(落榜)을 했다. 그래서 선생의 부친께서는 낙방만 일삼는 아들이 안타까워 나중에 밥벌이라도 하려면 관상을 배워보라 하셨다는 것이다.

 

선생은 부친의 조언(助言)에 따라 중국(中國)의 관상비서(觀相祕書) 마의상서(麻衣相書)를 구해서 독학(獨學)을 했고,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자 거울을 놓고 자신의 관상을 본 것이다. 한마디로 최악(最惡)이었다. 가난은 물론 온갖 풍파에 시달리고, 심지어 살인(殺人)을 저지르고 비명횡사(非命橫死)할 액운(厄運)이 끼어있는 관상이었다.

 

"내 관상이 이럴진대 누구의 관상을 봐줄 수 있단 말인가?" 비감(悲感)에 잠겨있던 선생의 눈에 마의상서 말미(末尾)에 있는 한 구절(句節)이 보였다. 상호불여신호(相好不如身好), 신호불여심호(身好不如心好). 관상(얼굴)이 좋은 것은 몸이(건강) 좋은 것만 못하고, 몸이 좋은 것은 마음(심상)이 좋은 것만 못하다.

 

관상(觀相)보다는 신상((相), 신상((相)보다는 심상(心相)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에 용기를 얻은 선생은 '어떻게 하면 좋은 심상(心相)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고민 끝에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위해 헌신하기로 작정을 했고, 훗날 상해 임시정부 수반이 되어 민족의 지도자가 된 것이다.

 

김구 선생이 읽은 마의상서(麻衣相書) 마지막 장(章) 심상(心相) 편에는 이런 일화(逸話)가 있다고 한다. 어느 날 마의선인(麻衣仙人)이 길을 가다 나무를 하러 가는 한 머슴을 만났다. 머슴의 얼굴을 보니 머지않아 죽을 관상이다. 마의선인은 머슴에게 “가까운 시일 내에 죽을 관상이니 무리해서 너무 많은 일을 하지 말게”라는 말을 남기고 가버렸다.

 

머지않아 죽을 것이라는 말을 들은 머슴이 주저앉아 비통(悲痛)해 하고 있을 때 계곡물을 따라 내려오는 나무껍질을 발견한 것이다. 자세히 보니 나무껍질 위에는 한 무리의 개미들이 물에 빠지지 않으려 발버둥 치고 있었고, 머슴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무껍질을 땅으로 건져 올려 개미들을 살려주었던 것이다.

 

얼마 후 마의선인은 머슴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놀랍게도 머슴의 얼굴에 서려있던 죽음의 그림자는 사라지고 부귀영화를 누릴 고귀(高貴)한 관상으로 변해 있었다. 자초지종 이야기를 들은 마의선인은 큰 깨달음을 얻었고, 아무리 작아도 누군가에게 선행을 베푸는 일은 관상과 운명까지 바꿀 수 있다는 글을 마의상서 마지막 장에 남겼다는 일화(逸話)다.

 

사람의 진면목(眞面目)을 보려면 그 사람의 마음 씀씀이를 보라고 했다. 예쁜 얼굴, 좋은 관상의 얼굴보다 착한 마음씨가 먼저라는 뜻이다. 남을 돕고, 배려하고, 베풀 줄 아는 심성(心性)을 갖고 있는 사람의 얼굴에서 천사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이유다.

 

관상에는 내상(內相)과 외상(外相)이 있다. 내상(內相)은 사람의 마음을 일컫는 심상(心相)을 말하는 것이고, 외상(外相)은 눈에 보이는 얼굴을 말한다. 착한 심상(心相)을 가진 사람은 외상(外相)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하니 '생긴 대로 논다' 라는 관상은 눈에 보이는 속일 수 없는 과학(科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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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yote Hills Regional Park(06-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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