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끄적이는 글

수구초심(首丘初心)

by 캘리 나그네 2020. 7. 31.

우리 속담에 ‘호랑이도 죽을 때면 제 굴에 가서 죽는다'는 말이 있다. 여우가 죽을 때가 되면 언덕을 향(向)해 머리를 두고 초심(初心)으로 돌아간다는 뜻의 수구초심(首丘初心)은 예기(禮記) 단궁 상편(檀弓上篇)에 나오는 말로 사람이나 짐승은 죽어서 자신의 근본(根本)인 고향(故鄕) 땅에 묻히고 싶어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호사수구(狐死首丘)와 같이 쓰이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공부하고, 결혼하고, 그리고 태평양을 건너와서 30년의 세월이 넘는 동안 미국에서 살고 있지만, 고향은 지금도 가슴 한편에 자리 잡은 채 아련한 추억 속으로 나를 이끌곤 한다.

 

학창 시절 방학 때면 어김없이 갔던 고향은 성인이 되어서도 시간나는 대로 찾았고, 그때마다 고향을 지키는 친구들과 밤새도록 술잔을 기울이며 옛 추억을 끄집어내 낄낄거리면서 시간 속 여행을 하곤 했다.

 

꿈에도 그리운 고향은 많이 변했다. 아직도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는 친구는 통화를 할 때마다 고향 얘기를 하는 내게 이런 말을 한다 "네가 기억하는 고향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사람도, 인정도... 모든 것이 다 변했다." ㅠ

 

 

내가 미국으로 이민오기 몇해 전 아버님이 건축하신 방 4개 욕실 2개가 있는 벽돌 집.  옥상에는 비닐하우스로 건조장을 만들어 수확한 고추를 말리셨고 지금은 큰 형님 내외분이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다.
내가 태어난 집터. 오래된 집을 헐어버리고 지금은 마늘을 심고 있다. 이곳에서 20여미터 떨어진 곳에 새로운 집이 있다.
어렸을 때 대나무가 가득하던 넓은 대밭도 채소를 심는 밭으로 변했다. 여름이면 대나무 밑에 가마니를 깔아놓고 시원한 그늘 밑에서 책을 읽기도 했다. 
대밭에서 바라보는 마을 풍경.  고목으로 변해가는 감나무도 아버지께서 손수 심으신 것이다. 
  증조할머니 열녀각과 어머니 효부각.  나주 향교(鄕校)에서 증조할머니에게 열녀상, 어머니에겐 효부상을 수여했고, 아버지는 후손들에게 알리기 위해 열녀각과 효부각을 건립하신 것이다.  증조할머니는 젊은 나이에 증조할아버지를 사별하고 수절하신 채 외동아들인 할아버지를 키우셨고, 1968년인가? 지속된 가뭄으로 명당에 묻힌 유골을 파내야 비가 온다는 속설을 믿은 타지인들이 증조할아버지 묘를 파헤치는 바람에 어머니 혼자서 여기저기 흩어진 유골을 수습해 20리가 넘는 어두운 밤길을 걸어서 집으로 오셨고, 그런 일화가 소문이 나서 효부상을 받게 된 것이다. 
마을회관을 겸하고 있는 노인정과 왼쪽에 보이는 마을 공동창고, 그리고 아래 ↓ 우산각이 있는 부지는 작은 아버지께서 마을에 기증하신 것이다.  
여름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낮잠을 즐길 수 있는 우산각 
300년이 넘었다는 마을 공동우물. 아무리 가뭄이 심해도 마르지 않는 우물은 이웃 마을 주민들이 물을 길러 갈 만큼 물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서쪽에서 바라 본 마을 전경
마을 친구들과 뛰놀던 소나무 밑은 둥그스럼한 민둥산이었는데 논으로 변했다. 
아주 오래된 무덤이 있던 민둥산도 밭으로 변했다. 겨울이면 이곳에서 모닥불을 피워 고구마를 구워먹고 연을 날리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마을 뒤에 있는 저수지. 우린 이 저수지를 소소리 방죽이라 불렀고 정월 대보름이면 저수지 건너편에 살고있는 아이들과 불싸움을 하기도 했다. 
저수지 옆엔 증조할머니 산소가 있다. 
나주 역사(驛舍)
기억속 영산포 시장이 아닌 장소가 다른 영산포 향토시장. 
나주에 가면 먹어봐야 하는 별미 나주 곰탕집이다. 
내가 3학년 까지 다녔던 초등학교. 예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지만 내 마음 속 모교다. 
내가 다닐 땐 단층 목조건물이었는데 지금은 콘크리트 건물이다. 건물은 변했어도 앞에 서있는 나무들은 아직 그대로 있다.

'끄적이는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홍어삼합(洪魚三合) 유래(由來)  (0) 2020.08.09
풍전세류 (風前細柳)  (0) 2020.08.03
오이 세개가 주는 행복  (0) 2020.07.26
경기도통령에게 어울리는속담  (0) 2020.07.23
근조(謹弔)  (0) 2020.07.1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