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보는 것이다. 일상에서 하는 이별은 인연이 닿으면 소식을 알 수 있고 얼굴도 마주칠 수 있지만 사별(死別)은 다시 볼 수 없다는 막막함에 깊은 슬픔과 상처를 남긴다. 특히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슬픔은 표현하기 힘들 만큼 클 것이다.
남편을 사별한 여자는 미망인(未亡人) 또는 과부(寡婦), 아내를 사별한 남자는 홀아비라고 부른다. 하지만 자식을 앞세운 부모에겐 그 어떤 명칭이 없다. 그만큼 슬픔이 커서 감내하기 힘들다는 뜻일 게다. 그동안 많은 죽음을 봐왔지만 젊은이들의 죽음은 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래서 속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그들의 죽음 앞에 진심으로 명복을 빌어준다.
동, 서양을 막론하고 사람의 죽음을 표현하는 단어는 많다. 우리는 흔히 젊은 사람이 죽었을 땐 요절(夭折), 또는 '요망(夭亡)했다고 하는데, 갑작스런 죽음은 급사(急死), 이것을 높인 말로 급서(急逝)라고도 하며 죽음 앞에 요(夭)나 절(折)이 붙으면 나이가 많지 않은 사람의 죽음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과거 중국에서는 천자(天子)나 황제(皇帝)가 죽었을 때 붕어(崩御), 훙어(薨御)라고 했다. 조선 시대에 왕이 죽었을 경우엔 승하(昇遐) 또는 등하(登遐)라고 했으며, 벼슬아치나 사대부(士大夫) 집안의 죽음에는 '생을 마치다'라는 뜻으로 졸(卒) 또는 '세상을 떠났다'라는 정도의 뜻인 서거(逝去)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대통령이나 국가원수 급의 죽음을 서거(逝去)라고 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죽음은 '별세(別世)하셨다' '돌아가셨다' '영면(永眠)하셨다'라고 말하고 행정 관청에서는 호적이나 주민등록상에 ‘사망(死亡)’이란 단어로 죽음을 표기(表記)한다. 사망(死亡)은 사람에게 사용하는 말이지 동물의 죽음에 사망이라고 해서는 안된다. 애완동물이 죽음을 맞이했을 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라는 표현이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김대건 신부님처럼 종교활동을 하다 죽임을 당한 분을 순교자(殉敎者)라고 부르지만 순교(殉敎)는 종교인을 비롯한 모든 일반인들이 압박(壓迫)과 박해(迫害)를 견디며 자신의 사상(思想)이나 주의(主義), 신앙(信仰)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특정 종교와는 관계가 없는 말이다.
순국(殉國)은 국가를 지키기 위한 활동을 하다 사망한 것을 말하고, 경찰관, 소방관 등 공무원이 업무 중 사망했거나 군인(軍人)이 비전투 상황에서 공적인 일을 하다 사망한 것은 순직(殉職), 군인을 비롯한 전투원(戰鬪員)이 전시(戰時) 상황에서 적의 공격을 받아 사망한 것을 전사(戰死), 이런 죽음을 당한 사람을 전사자(戰死者)라고 부른다.
의사들이 환자의 죽음을 알리는 '운명(殞命)하셨다'는 생명이 다했다는 뜻이지만 운명은 차분한 분위기에서 서서히 맞게 된 죽음을 말하고, 운명과 뜻은 같지만 좀 더 강렬한 뉘앙스를 지닌 절명(絶命)은 사고 또는 급성 질환 등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갑작스러운 죽음을 당했을 때 쓰는 말이다.
무병장수(無病長壽)하고 후손들이 임종(臨終)을 지켜보는 가운데 천수(天數)를 누리고 사망한 경우엔 호상(好喪)이라 하고, 부모보다 자식이 먼저 죽었을 땐 악상(惡喪), 과부가 된 여인이 죽은 남편에 대한 절개(節槪)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끊는 것은 순절(殉節)이라 하여 마을 어귀에 열녀문(烈女門)을 세워 자손대대에 걸쳐 자랑거리로 삼기도 했다.
자결(自決)은 어떤 신념을 지키기 위해 구차하게 사느니 죽음을 택하겠다는 결단을 내려 자살한 경우를 미칭(美稱) 한 것이며, 옥구슬은 부서질지언정 진흙에 구르지 않는다는 중국 고사성어에서 유래한 옥쇄(玉碎)는 자살이라기보다는 전쟁에서 패배한 쪽이 항복을 거부하고 집단으로 자살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주로 섬나라 일본에서 사용되었던 용어다.
가톨릭에서 죽음은 선종(善終), 개신교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는 뜻의 소천(召天), 불교는 극락왕생(極樂往生)이나 번뇌(煩惱)에서 벗어나 완벽한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간다는 뜻을 가진 열반(涅槃), 또는 입적(入寂), 입멸(入滅), 귀적(歸寂)..등으로 표현하지만, 고승(高僧)의 죽음은 '열반에 들었다', 수도승(修道僧)은 '입적했다'라고 한다.
순수한 우리말 중에서 죽음을 속되게 표현하는 욕설(辱說)이라고 할 수 있는 '뒈지다'는 세상에 둘도 없는 인간쓰레기의 죽음을 지칭할 때 쓰는 말이다. 그 외 황천 갔다, 골로 갔다, 관속에 들어갔다, 숟가락을 놓았다.. 등이 있다. 내 고향 남도에는 '깨벗다'라는 말도 있지만 이것은 이승의 모든 옷(미련)을 벗고 저승으로 간다는 의미로 사람의 죽음에 대한 적절한 표현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지금까지 사람의 죽음을 놓고 '잘 뒈졌다'라고 말했던 적이 딱 한번 있다. 그것은 2021년 11월 23일, 광주(光州) 양민학살을 자행했던 살인마(殺人魔) 전두환이 죽었을 때였고, 앞으로는 민주당 대선후보를 놓고 경쟁하던 때 내가 가장 존경하는 노무현 대통령을 능멸하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저주를 퍼부었던 혜경군 이재명이 죽으면 '잘 뒈졌다'는 말을 거침없이 할 것이다.
김대건(金大建): 우리나라 최초의 가톨릭교회 신부(1822~1846). 세례명/ 안드레아. 헌종 2년(1836) 프랑스 신부 모방에게 영세를 받았으며 중국에 가서 신학과 서양 학문을 배우고 입국, 헌종 12년(1846)에 체포되어 순교(殉敎)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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