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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이는 글

백담사(百潭寺)

by 캘리 나그네 2021. 7. 14.

사진-김태은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설악산(雪嶽山)에 있다. 647년(진덕여왕 1) 자장(慈藏)이 설악산 한계리에 창건하였으며, 그때 아미타삼존불을 조성, 봉안하고 절 이름을 한계사(寒溪寺)라 했다고 한다. 690년(신문왕 10)에 실화(失火)로 소실되어 719년(성덕왕 18)에 재건하였다.

 

785년(원성왕 1)에 다시 불탔으며, 종연(宗演), 광학(廣學), 각동(覺洞), 영희(靈熙), 법찰(法察), 설흡(雪洽) 등이 중건을 서둘러 790년에 한계사 터 아래 30리 지점에 이건 하고 절 이름을 운흥사(雲興寺)라고 하였다. 984년(성종 3) 다시 화재로 인해 승려 동훈(洞薰), 준희(俊熙) 등이 운흥사지 북쪽 60리쯤 되는 곳으로 이건 하고 987년 심원사(深源寺)라고 개명하였다.

 

이때 법당, 극락전, 벽운루(碧雲樓), 선승당(禪僧堂), 동상실(東上室) 등의 건물을 중수하였으며, 부속 암자는 동암(東庵), 원명암(元明庵), 백련암(白蓮庵), 오세암(五歲庵), 봉정암(鳳頂庵) 등이 있었으며, 동훈, 준희 등 뛰어난 고승들이 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약 450년 동안 전승되다가 1432년(세종 14)에 네 번째 화재로 절이 전소되었다. 그 뒤 2년 만에 동하(洞下) 30리쯤 되는 곳에 선구사(旋龜寺)라고 개칭하고, 의준(儀俊), 해섬(海暹), 취웅(翠雄)등이 법당과 극락전, 요사채 2동을 세웠다.

 

그러나 1443년 화재로 다시 소실되었고, 1447년에 옛터의 서쪽 1리쯤 되는 곳에 다시 절을 세우고 영축사(靈鷲寺)라 하였다. 김시습(金時習)이 부속 암자인 관음암(觀音庵)에 와서 머리를 깎고 출가했던 1455년(세조 1)에 화재로 소실되어 재익(載益), 재화(載和), 신열(愼悅) 등이 옛 절터의 상류 20리 지점에 중건하고 백담사(百潭寺)라고 개칭하였다.

 

1775년(영조 51) 겨울에 다시 불에 타서 승려들은 흩어졌지만, 최붕(最鵬)이 태현(太賢), 태수(太守) 등과 인법당(因法堂)을 짓고 심원사(尋源寺)라 개칭한 뒤 6년 동안 머물면서 법당과 향각(香閣) 등의 건물을 중건하였다. 심원사를 다시 백담사로 개칭한 것은 최붕과 설담(雪潭)이 절을 중건한 1783년(정조 7)이었고, 이때의 백담사라는 이름이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현재 이름인 백담사는 7차에 걸친 실화가 닥쳤고, 그때마다 터전을 옮기면서 이름을 바꾸었다.

 

백담사라는 이름은 골이 깊고 흐르는 물의 연원이 먼 내설악에 자리한 절이라는 뜻이나, 거듭되는 화재를 피해보고자 하는 뜻이 담겨진 이름이라는 설을 다음의 전설로 알 수 있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화재가 있을 때마다 주지스님의 꿈에 도포를 입고 말을 탄 분이 나타나 변을 알려주었다고 하는데 기이하게도 지금도 이 근처에 도포를 입고 말을 탄 듯한 암석이 솟아 있다.

 

거듭되는 화재로 절 이름을 고쳐보려고 하던 어느 날 밤, 주지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대청봉에서 절까지 웅덩이[潭]를 세어 보라고 하여 이튿날 세어보니 꼭 100개에 달하였다. 그래서 담자를 넣어 백담사라 이름을 고치는 동시에 지금의 장소로 옮겼는데, 담자가 들었기 때문에 그 뒤부터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1915년 겨울밤에 일어난 화재는 불상과 탱화 20여 위(位)를 제외한 건물 70여 칸과 경전·범종까지도 모두 태워 버렸다. 당시의 주지 인공(印空)은 사무(寺務)를 오세암에서 행하면서 백담사의 중건에 착수하였고, 기호(基鎬)와 인순(仁淳) 등이 그를 도왔다.

 

강원도 일대를 다니면서 시주받은 1,786원 30전으로 1919년 4월에 법당 20칸과 화엄실(華嚴室) 20칸을 건립하였으며, 1921년 봄에는 응향각(凝香閣) 및 사무실 30칸 등을 이룩하고, 종과 북을 새로이 주조하여 낙성법회(落成法會)를 열었다. 한용운이 백담사사적(百潭寺史蹟)을 편찬한 1928년 당시의 백담사는 복구가 끝나고 정리가 되어 있을 때였다.

 

백담사는 한용운이 머물면서 불교유신론(佛敎維新論)과 십현담주해( 十玄談註解), '님의 침묵'을 집필하는 장소가 되었고 만해사상의 고향이 되었다. 그러나 6·25 전쟁 때 소실되었으며, 1957년에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정면의 대웅보전(大雄寶殿)을 중심으로 좌우에 칠성각(七聖閣), 선원(禪院), 요사채 등이 있고, 남쪽으로 150m 떨어진 곳에 관음전(觀音殿)이 있다.

 

출처: Daum 백과 - 백담사(百潭寺)

 

사진-김태은

 

사진-김태은

 

사진-김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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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태은

 

설악산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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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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