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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겨온 글

아버지와 아들

by 캘리 나그네 2010. 10. 26.





아버지와 아들

 

 

82세의 노인이 
52세 아들과 거실에 마주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우연히 까마귀 한 마리가 창가의 나무에 날아와 앉았습니다.

 

노인이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저게 뭐냐?”

아들은 다정하게 대답했습니다.
“까마귀요. 아버지”

 

아버지는 조금 후 다시 물었습니다.
“저게 뭐냐?”

아들은 다시 대답했습니다.
“까마귀라고요”

 

노인은 조금 뒤 또 물었습니다.
세 번째였습니다.
“저게 뭐냐?”

아들은 짜증이 났습니다.
“글쎄, 까마귀라고요”

 

아들의 음성에는 아버지가 느낄 만큼 짜증이 섞여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뒤 아버지는 다시 물었습니다.
네 번째였습니다.
“저게 뭐냐?”

 

아들은 그만 화가 나서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까마귀. 까마귀라고요. 그 말도 이해가 안돼요? 
왜 자꾸만 같은 질문을 반복하세요?”

 

조금 뒤였습니다.

아버지는 방에 들어가 때가 묻고 찢어진
일기장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 일기장을 아들에게 펴 보였습니다.

 그 일기장에는 아들의 세 살때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늘은 까마귀 한 마리가 창가에 날아와 앉았다. 
어린아들은 “저게 뭐야?”하고 물었다. 
나는 까마귀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런데 아들은 연거푸 23번을 똑같이 물었다.

귀여운 아들을 안아주며 끝까지 다정하게 대답해 주었다. 
까마귀라는 똑같은 대답을 23번이나 하면서도 즐거웠다. 

 

아들이 호기심을 갖는 것에 감사했고, 
아들에게 사랑을 확인할 수 있으니 행복했다.

 

반복적으로 같은 질문을 하는 아버지. 
그리고 같은 질문이 이어지자 짜증스러워진 아들. 

 

그런 아들이 노인이 되면 다시 그의 아들 때문에 
속이 상할 법도 한 질문과 대화입니다.

 

그렇습니다.


아이가 커서 보상받기 원하지 말라는 말을 합니다. 
키울 때 많은 희생을 했지만 키우는 그 자체만으로 행복을 얻었으니

더 이상 기대하지 말라,

 

댓가를 원하는 순간 
불행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한다는 뜻이지요.

 

자녀들을 키울 때 행복했던 것만으로 
이미 보상을 받았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그런 부모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누구나 품안의 자녀로 영원히 보호하며, 
또 그들로부터 보상받기를 원합니다.

 

아버지(어머니)는
 한 가정을 행복으로 이끌어가는 주체입니다.
그의 자리는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휴가도 없고, 정년도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아버지학교에 많은 아버지들이 몰린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역할을 제대로 해보기 위한 노력의 단면입니다.

 

아버지의 자리. 
그만큼 어깨가 무거운 자리이고,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런데 키울 때 행복했으니 
그것으로 보상받은 것으로 생각해야 할까요?

 

나이가 많든 적든
 이 기회에 자녀로서의 나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어떨까요? 

혹여 철없는 언행에도 불구하고 행복에 겨워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버지의 일기장"속에서 쓰여져 있지 않은지 찾아보면서 말입니다.

(퍼온 글)

(출처가 기억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저작권자가 원할시 바로 삭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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