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이 다가오면 생각나는 가수(歌手)가 있다. 1970년 데뷔해서 시(詩)를 노래하는 음유시인(吟遊詩人)으로 불렸던 고(故) 이동원 씨다. 그는 대중음악(大衆音樂)과 클래식 음악(classic音樂)의 협업(協業)에 물꼬를 튼 선구자(先驅者)이기도 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로 시작하는 정지용 시인의 '향수'는 김희갑 씨가 작곡했고 1989년 테너 박인수 씨와 함께 불러서 국민 애창곡(國民愛唱曲)이 되었던 노래다.
감미로운 목소리로 서정적(抒情的)인 곡(曲)을 기타와 피아노 선율(旋律)에 맞춰 노래했던 이동원 씨는 고은(高銀) 시인 (詩人)이 쓰고 김민기 씨가 작곡한 '가을편지'를 노래했고, 명곡(名曲) '세월이 가면'을 부르기도 했다. '가을편지'와 '세월이 가면'은 내가 미국에 오기 전 매년 가을이 되면 서울 길거리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나왔고 찻집에서도 쉽게 들을 수 있었다. 참고로 이동원 씨는 서울 청담동에서 '가을2'라는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에 입술은 내 가슴에 남아있네...'로 시작하는 '세월이 가면'은 1970년대 통기타 가수 박인희 씨가 불러서 크게 히트했던 노래다. 낙엽(落葉)이 쌓이고 한 해가 저물어가는 쓸쓸한 가을에 많은 이들의 심금(心琴)을 울리기도 했던 이 곡(曲)의 노랫말은 서른 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박인환(朴寅煥,1926-1956) 시인(詩人)이 썼다.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던 1956년 초(初) 봄, 서울 명동(明洞)의 한 주점(酒店)에서 만들어진 '세월이 가면'은 ‘과거를 묻지 마세요’ ‘미사의 종’으로 유명했던 가수 겸 배우 나애심, 시인(詩人) 박인환, 극작가 이진섭, 언론인 송지영이 술을 마시면서 나애심에게 노래 한곡 부르라고 하자 나애심이 부를 노래가 없다며 사양을 했고 이때 박인환 시인이 종이에 끄적거렸던 시(詩)가 노래로 탄생한 것이다.
작곡(作曲)을 할 줄 알았고 샹송(chanson)에도 일가견이 있던 극작가(劇作家) 이진섭이 그 자리에서 시(詩)에 곡(曲)을 붙였고 나애심이 흥얼거리듯 불렀는데 나중에 합석(合席)한 테너 임만섭이 ‘세월이 가면’을 노래하자 길을 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박수를 보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후(後)에 ‘세월이 가면’은 그 시절 명동(明洞)이 만든 최고의 걸작(傑作)이란 찬사(讚辭)를 받는 시(詩)와 노래가 되었다.
'세월이 가면'(박인환 시인) ‘가을 편지’(고은 시인), ‘이별노래’(정호승 시인), ‘명태’(양명문 시인), ‘물나라 수국’(김성우 시인) 등 아름다운 시에 곡을 붙인 노래를 즐겨 불렀던 음유시인(吟遊詩人) 이동원 씨는 1951년 부산에서 출생했고 2021년 11월 14일 오전 4시 10분 식도암으로 사망했다. 그의 투병을 지켜본 방송인 전유성 씨는 1970년대 서울 명동에서 음악 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만나 온 오랜 지기(知己)로 임종(臨終)이 올 때까지 고인의 곁에 있었다고 한다.
스마트폰에서 동영상보기 ☞ https://youtu.be/-KhB-l57oOQ
지금 그 사람은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세월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내 싸늘한 가슴에 있네
세월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내 싸늘한 가슴에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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