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끄적이는 글

몽니

by 캘리 나그네 2023. 10. 8.

 

 

어렸을 적 고향 친구 중에 '몽니쟁이'가 있었다. 녀석이 얼마나 심술궂었는가 하면 또래 여자아이들이 모여 있으면 돌멩이나 흙덩이를 던져서 머리나 얼굴에 상처를 내기도 했고, 고무줄놀이를 하면 끊고 도망가거나 지푸라기에 개똥을 싸와서 던졌고,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가면 개구리를 넣기도 했던 '몽구'라는 별명(別名)으로 불리던 악동(惡童)이었다.

 

여름날 밤이면 식수(食水)로 사용하는 마을 공동우물에 발가벗고 들어가서 목욕을 했고, 남의 텃밭에 열려있는 오이, 참외는 자기네 것인 양 따 먹었으며, 밭두렁에 있는 호박을 발로 밟아 놓거나 낫으로 찍어서 못쓰게 하는 등 온갖 말썽을 부리는 탓에 마을 어른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던 천하(天下)에 둘도 없는 '몽니쟁이'였다.

 

남이 잘되는 것에 배가 아파서 심술을 부리거나 자신이 받고자 하는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때 성깔을 부리는 행동을 '몽니 부린다'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빗대서 '몽니쟁이' 또는 '몽짜'라고 부른다. '몽짜'는 우리말 국어사전(國語辭典)에 '음흉(陰凶)하고 심술궂게 욕심을 부리는 짓, 또는 그런 사람'이라고 쓰여있다.

 

'몽니'는 심술, 훼방, 트집, 투정의 집성(集成)이다. 몽니에서 파생된 단어로 '몽니쟁이', '몽꾼'이 있고 이들이 하는 행위(行爲)를 '몽니 부린다', '몽니가 사납다', '몽니 궂다' 등으로 표현한다. 몽니는 강자(強者)가 약자(弱者)에게 드러내놓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약자가 강자에게 덤비지는 못하고 참고 있자니 부아가 치밀어 견딜 수 없을 때 은근히 해코지를 하는 것도 있다.

 

몽니를 부리는 인간들 때문에 경제적 손실이나 사회적 불안이 증가(增加)한다. 2023년 9월 1일부터 9월 4일 사이에 잘려서 없어진 Mission Peak Pole도 주말이나 공휴일에 정상(頂上)의 쇠기둥에 올라서 사진을 찍겠다고 길게 줄을 서는 Hiker들이 보기 싫었던 어떤 '몽니쟁이'가 Cordless hacksaw(무선 쇠톱)를 가져와 잘라서 아래로 굴려버린 것이라고 한다.

 

'몽니쟁이'의 특징은 사람들이 불행한 일을 겪거나 위기(危機)에 처한 상황을 보면서 행복을 느낀다. 남의 불행(不幸)은 곧 나의 행복(幸福)이라고 생각하며, 주변에서 행복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신은 불행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더 가진 사람, 더 좋은 환경의 사람을 하릴없이 모함(謀陷)하거나 음해(陰害)를 가하기도 한다.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마음'이라는 독일어 'Schadenfreude'는 행복이 아니다. 정상적인 행복은 남의 불행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행복은 자신의 마음에서 찾는 것이다. 끊임없이 남과 비교(比較)하고, 시기(猜忌)하고, 질투(嫉妬)하고, 음해(陰害)하면서 내게 없는 것, 부족한 것을 채우려고 한다면 살아가면서 한순간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피곤하고 불쌍한 인생인 것이다.

 

 

 

10월 5일(목) 아침에 오른 미션픽 정상에 두 명의 남자가 있어 복구한 Pole도 볼 겸 해서 다가갔다.

 

 

↑ 빨간 상의를 입은 흑인 청년이 검은 옷을 입은 백인과 나에게 Pole이 잘려나갔던 상황을 설명한다. 사진을 찍기 위해 길게 줄을 서는 하이커들이 보기 싫었던 어떤 '몽니쟁이'가 Pole의 중간을 잘라서 아래↓낭떠러지로 굴려놓은 것을 찾아서 복구한 것이라고 한다.

 

 

 

8년 전인 2015년 7월 주말에 이토록 많은 인파가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섰었는데, 지금은 주말이나 공휴일이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Pole에서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줄지어 기다린다.  ↓

 

2015년 7월 3일(금) 오전 9시 30분에 담은 미션픽 모습

'끄적이는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금 이 시간  (0) 2023.11.01
음유시인 이동원  (0) 2023.10.26
It's back  (0) 2023.10.05
그저 그런 일상(日常)  (0) 2023.09.16
엄니의 손  (0) 2023.08.2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