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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음악

봄비-김추자, 박인수

by 캘리 나그네 2022. 3. 20.

비오는 오후(Mar19-2022)

 

 

이슬비 내리는 길을 걸으면

봄비에 젖어서 길을 걸으면

나 혼자 쓸쓸히 빗방울 소리에

마음을 달래도

 

외로운 가슴을 달랠 길 없네

한없이 적시는 내 눈 위에는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한없이 흐르네

 

봄비

나를 울려주는 봄비

언제까지 내리려나

마음마저 울려주네

봄비

 

외로운 가슴을 달랠 길 없네

한없이 적시는 내 눈 위에는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한없이 흐르네

 

봄비

나를 울려주는 봄비

언제까지 내리려나

마음마저 울려주네

봄비

 

외로운 가슴을 달랠 길 없네

한없이 적시는 내 눈 위에는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한없이 흐르네

 

루~ ~ 루~ ~ 루~ ~    - 김추자 -

 

 

이슬비 내리는 길을 걸으면

봄비에 젖어서 길을 걸으면

나 혼자 쓸쓸히

마음을 달래도

마음을 달래며

 

비 봄비 봄비

봄비가 내리네

봄비가 내리네

봄비가 내리네

...................

-박인수-

 

 

유투브에서 동영상보기  ☞  https://youtu.be/EsWupqvOHOc

 

 

 

 

 

박인수

1947년생 대한민국 원로 소울 가수다. 1970년 신중현이 작곡한 '봄비'로 유명세를 얻었지만 곧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어 내리막길을 걸었고, 아내와도 이혼했으며 1990년대 이후로 기초생활수급자로 전락해 비참한 생활을 하는 중이다.

 

2010년대에 치매, 췌장암 발병으로 말년에 고생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2019년 기준 병세가 호전되어 비교적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참여 곡으로 '봄비'와 가수 장덕의 추모곡인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가 있다.

 

출처: 박인수(1947) - 나무위키 (namu.wiki)

 

 

김추자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는 말이 있었을 만큼 70년대를 풍미했던 대표적 소울 가수다. 한국 대중음악의 전설 신중현의 곡을 많이 노래한 가수다. 1951년 춘천에서 5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어른들이 부르는 판소리를 그대로 따라 부를 만큼 노래에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춘천여중, 춘천여고를 진학하면서 당시 춘천의 남고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미술대학을 가고 싶어 시험을 쳤지만 필기시험에 떨어져 당시 후기대학이었던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본인 말로는 비슷한 예술 분야라서 연극영화과를 선택했다고 한다.

 

1969년 '늦기 전에',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등의 곡을 수록한 1집을 발표하여 가수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신중현의 매니저와 김추자의 형부가 친한 사이었는데, 형부가 다리를 놔줘서 신중현의 사무실을 찾아가게 되었고, 노래를 들어본 신중현이 곡을 준 것이 데뷔곡 '늦기 전에'다.

 

신중현 씨 회고에 따르면 당시 스타 가수였던 '김상희'의 녹음을 봐주느라 정신이 없는데 며칠동안 찾아오기에 테스트를 해본 결과 쓸만하다 싶어 '늦기 전에'를 주었다고 한다. 이후 '님은 먼 곳에 (1970)', '거짓말이야 (1971)' 등 히트곡을 내놓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다.

 

육감적인 몸매, 화려한 무대 매너, 몸에 찰삭 붙는 옷을 입고 공연을 하던 그녀의 모습은 많은 남성들을 설레이게 했으며, 그 당시 유명했던 담배 '청자'를 빗대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김추자는 데뷔 이후 동양방송, 문화방송, KBS 등 방송 3사에 출연하면서 얼굴을 알렸고, 그 당시 취입한 '님은 먼 곳에'는 충무로 영화감독들이 타이틀로 쓰고자 노래 제목 입찰까지 있었으며, 음반 타이틀 매매 최고가인 50만 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살인적인 스케줄 때문에 여러 번 방송을 펑크 냈고 이 때문에 KBS와 가수협회에서 출연정지 징계를 받기도 했다. 소주병 테러로 얼굴이 다치기도 했으나 재기에 성공했고, 1972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수상 이후 주로 MBC에 출연했으며 데뷔 3년 만에 김추자 단독 방송까지 편성되는 등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갖은 소문과 사건사고도 뒤따랐는데, 대표적인 것이 간첩설이다. 1971년 '거짓말이야'로 활동할 당시 노래와 함께 흔드는 손짓이 북한과 교신을 하는 것 아니냐 하여 실제로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후에 김추자가 밝힌 바에 따르면 박정희의 초대를 거절한 것이 간첩설의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1971년 여름, 김추자는 돌연 은퇴를 선언한다. 방송계의 구태와 관행처럼 내려오는 적폐를 묵과할 수 없음이 원인이라고 밝힌 그녀에게 가수협회는 1년 방송활동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린다. 그전에는 KBS에서 촬영 무단 불참 등을 이유로 1개월 출연정지 처분을 내렸었다.

 

김추자가 겪었던 가장 큰 사고는 1971년 12월 5일 오전 11시, 매니저인 '소윤석'이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소주병으로 그녀의 얼굴을 난자한 사건일 것이다. 사고 직후 명동 고려병원으로 긴급 후송되어 응급수술을 받았고, 이 사건으로 총 6번에 걸쳐 성형수술을 받아야 했다.

 

1975년 12월, 가요계 정화운동과 대마초 사건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신중현의 사무실에서 한두 번 피워봤으며 자신의 것이라고 지목당한 대마초에는 죄다 곰팡이가 슨 점 등 그녀의 혐의에 의심스러운 점이 있었지만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어쩔 수 없이 타의에 의해 가요계를 떠나게 된다.

 

3년 후인 1978년 재기하려 하였으나 여의치 않았고, 이후 1981년 당시 동아대 정치학과 교수인 박경수 씨와 결혼하면서 연예계를 완전히 떠나게 된다. 참고로 김추자가 한창 활동하고 있을 70년대 박경수 씨는 네브라스카 대학교에 유학을 가 있었던지라 김추자를 처음 봤을 때 누군지 몰랐다고 한다.

 

이후 가정주부로 살면서 언론의 인터뷰도 피한 채 1988년까지 가끔 무대에 오르다 가요계를 떠났으며, 알려진 2000년 컴백설은 김추자의 유명세를 이용한 일련의 사기였다고 한다. 

 

출처: 김추자 - 나무위키 (namu.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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