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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이는 글

백기완 선생

by 캘리 나그네 2021. 2. 15.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아직도 귀에 들리는 듯 한데,

산자여 따르라 외치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한데,

산자들을 남겨놓고 선생은 가셨다.

장산곶 매가 되어 훨훨 날아 장산곶으로 가셨다.

 

마음의 빚을 덜어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삼가 고개숙여 백기완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_()_

 

 

 

<묏 비나리>

 

맨 첫발

딱 한 발 띠기에 목숨을 걸어라

목숨을 아니 걸면 천하 없는 춤꾼이라고 해도

중심이 안 잡히나니

그 한 발 띠기에 온몸의 무게를 실어라

 

아니 그 한발 띠기로 언 땅을 들어 올리고

또 한발 띠기로 맨바닥을 들어 올려

저 살인마의 틀 거리를 몽창 들어 엎어라

들었다간 엎고 또 들었다간 또 엎고

 

신바람이 미치게 몰아쳐 오면

젊은 춤꾼이여

자네의 발끝으로 자네 한 몸만

맴돌라 함이 아닐세 그려

하늘과 땅을 맷돌처럼

이 썩어 문드러진 하늘과 땅을 벅,벅,

네 허리 네 팔뚝으로 역사를 돌리시라

 

돌고 돌다 오라가 감겨오면

한 사위로 제끼고

돌고 돌다 죽엄의 살이 맺혀오면

또 한 사위로 제끼다 쓰러진들

네가 묻힐 한 줌의 땅이 어디 있으랴

 

꽃상여가 어디 있고

마주재비도 못타보고 썩은 멍석에 말려

산고랑 아무데나 내다 버려질지니

그렇다고 해서 결코 두려워하지 말거라

 

팔다리는 들개가 뜯어가고

배알은 여우가 뜯어가고

나머지 살점은 말똥가리가 뜯어가고

뎅그렁, 원한만 남는 해골바가지

 

그리되면 띠루띠루 구성진 달구질소리도 자네를 떠난다네

눈보다만 거세게 세상의 사기꾼

협잡의 명수 정치꾼들은 죄 자네를 떠난다네

 

다만 새벽녘 깡추위에 견디다 못한

참나무 얼어 터지는 소리

쩡,쩡, 그대 등때기 가른 소리 있을지니

그 소리는 천상

죽은 자에게도 다시 치는

주인놈의 모진 매질소리라

천추에 맺힌 원한이여

 

그것은 자네의 마지막 한의 언저리마저

죽이려는 가진 자들의 모진 채쭉소리라

차라리 그 소리 장단에 꿈틀대며 일어나시라

자네 한사람의 힘으로만 일어나라는 게 아닐세 그려

 

얼은 땅, 돌뿌리를 움켜쥐고 꿈틀대다

끝내 놈들의 채쭉을 나꿔채

그 힘으로 어영차 일어나야 한다네

 

치켜뜬 눈매엔 군바리가 꼬꾸라지고

힘껏 쥔 아귀엔 코배기들이 으스러지고

썽난 뿔은 벌겋게 방망이로 달아올라

그렇지

사뭇 시뻘건 그놈으로 달아올라

 

벗이여

민중의 배짱에 불을 질러라

꽹쇠는 갈라쳐 판을 열고

장고는 몰아쳐 떼를 부르고

징은 후려쳐 길을 내고

북은 쌔려쳐 저 분단의 벽

제국의 불야성, 왕창 쓸어안고 무너져라

 

무너져 피에 젖은 대지 위엔

먼저 간 투사들의 분에 겨운 사연들이

이슬처럼 맺히고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 들릴지니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져

세월은 흘러가도

구비치는 강물은 안다

 

벗이여 새날이 올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일어나라 일어나라

소리치는 피맺힌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산자여 따르라"

 

노래 소리 한번 드높지만

다시 폭풍은 몰아쳐

오라를 뿌리치면

다시 엉치를 짓모고 그걸로도 안되면

다시 손톱을 빼고 그걸로도 안되면

그곳까지 언 무를 쑤셔넣고 아.........

드 어처구니없는 악다구니가

대체 이 세상 어느 놈의 짓인줄 아나

바로 늑대라는 놈의 짓이지

 

사람 먹는 범 호랑이는 그래도

사람을 죽여서 잡아먹는데

사람을 산채로 키워서 신경과 경락까지 뜯어먹는 건

바로 이 세상 남은 마지막 짐승 가진자들의 짓이라

그 싸나운 발톱에 날개가 찢긴

매와 같은 춤꾼이여

 

이때

가파른 벼랑에서 붙들었던 풀포기는 놓아야 한다네

빌붙어 목숨에 연연했던 노예의 몸짓

허튼춤이지, 몸짓만 있고

춤이 없었던 몸부림이지

춤은 있으되 대가 없는 풀죽은 살풀이지

 

그 모든 헛된 꿈을 어르는 찬사

한갓된 신명의 허울은 여보게 아예 그대 몸에

한오라기도 챙기질 말아야 한다네

 

다만 저 거덜난 잿더미속

자네의 맨 밑두리엔

우주의 깊이보다 더 위대한 노여움

꺼질수 없는 사람의 목숨이 있을지니

바로 그 불꽃으로 하여 자기를 지피시라

 

그리하면 해진 버선 팅팅 부르튼 발끝에는

어느덧 민중의 넋이

유격병처럼 파고들어

뿌러졌던 허리춤에도 어느덧

민중의 피가 도둑처럼 기어들고

어깨짓은 버들가지 신바람이 일어

나간이 몸짓이지 그렇지 곧은 목지 몸짓

 

여보게, 거 왜 알지 않는가

춤꾼은 원래가

자기 장단을 타고난다는 눈짓 말일세

그렇지

싸우는 현장의 장단소리에 맞추어

벗이여, 알통이 벌떡이는

노동자의 팔뚝에 신부처럼 안기시라

바로 거기선 자기를 놓아야 한다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온몸이 한 줌의 땀방울이 되어

저 해방의 강물 속에 티도 없이 사라져야

한 춤꾼은 비로소 구비치는 자기 춤을 얻나니

 

벗이여

저 비록 이름없는 병사들이지만

그들과 함께 어깨를 쳐

거대한 도리깨처럼

저 가진자들의 거짓된 껍줄을 털어라

 

이세상 껍줄을 털면서 자기를 털고

빠듯이 익어가는 알맹이, 해방의 세상

그렇지 바로 그것을 빚어내야 한다네

승리의 세계지

그렇지, 지기는 누가 졌단 말인가

 

우리 쓰러졌어도 이기고 있는 민중의 아우성 젊은 춤꾼이여

오, 우리굿의 맨마루, 절정 인류최초의 맘판을 일으키시라

온몸으로 디리대는 자만이 맛보는

승리의 절정 맘판과의

짜릿한 교감의 주인공이여

 

저 폐허 위에 너무나 원통해

모두가 발을 구르는 저 폐허위에

희대를 학살자를 몰아치는

몸부림의 극치 아, 신바람 신바람을 일으키시라

 

이 썩어 문드러진 놈의 세상

하늘과 땅을 맷돌처럼 벅,벅,

네 허리 네 팔뚝으로 역사를 돌리다

마지막 심지까지 꼬꾸라진다 해도

언땅의 어영차 지고 일어서는

대지의 새싹 나네처럼

젊은 춤꾼이여

딱 한발띠기에 일생을 걸어라

 

<묏 비나리>(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 -백기완-

 

 

<장산곶매 이야기>

 

옛날 옛날에 황해도에 구월산 줄기가 바다를 향해 쭉 뻗다가, 뚝 끊어진 ‘장산곶’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산맥과 바닷가 맞부딛히는 곳이라 물살이 드세고 땅의 기운이 센 곳이었다. 헌데 이 곳은 땅의 기운이 하도 드세어서 약한 것들은 살아남질 못했다.

 

그 장산곶에 우람한 낙락장송이 우거진 숲이 있었는데, 그 숲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다가, 나쁜 놈들한테 쫒기는 사람들이 들어가곤 했다. 그 이유인즉, 나쁜 놈들이 칼을 들고 들어가면 그 칼에 금방 녹이 슬어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은 그 숲에 ‘장산곶 매’의 정기가 서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장산곶 숲속에 날짐승 중 으뜸이라 할 수 있는 매가 살았는데 그 중 으뜸인 장수매를 일컬어 장산곶 매라 한다. 이놈은 주변의 약한 동물은 괴롭히지 않고 일년에 딱 두번 대륙으로 사냥을 나가는데 떠나기 전날 밤 부리질을 하며 자기 둥지를 부수어 낸다.

 

장산곶 매가 한 번 사냥을 나선다는 건 생명을 건 혼신의 싸움이었으므로 그 부리질은 마지막 입질 연습이요, 또한 그것을 통해 자신의 마지막 안식처까지 부수어 내며 자신의 정신적 상황을 점검했던 것이다. 그래서 장산곶 사람들은 매가 부리질을 딱딱-- 시작하면 마음을 조이다가 드디어 사냥을 떠나면 바로 그 순간 봉화를 올리고 춤을 추며 기뻐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하루는 큰 대륙에서, 우리집보다 더 큰 날개를 가진 독수리가 쳐들어와서 온 동네를 쑥밭으로 만들었다. 송아지도 잡아가고, 아기도 채 가고, 농사 지은 것도 다 망쳐버리고, 동네 사람들은 많이 다치고, 죽기도 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기운이 빠져 막 우는데 장산곶매가 날아올랐다. 동네 사람들은 징두 치구 꽹과리도 치면서 막 응원을 했다.

 

독수리는 그 큰 날개를 한 번 휘두르면 회오리가 일어날 지경이었고, 장산곶매는 그에 비하면 형편없이 작아 보였다. 싸움은 밤새 계속되었다. 흰옷 입은 사람들의 옷에 꽃잎처럼 붉은 피가 뚝뚝 떨어져 번지기 시작했다. 장산곶매와 물 건너온 독수리는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장산곶매는 용감히 싸웠다. 처음엔 그놈의 날개 바람에 휘청거리기도 했지만 싸우면서 그놈의 약점을 알았다. 날개가 아무리 커도 날갯죽지는 별거 아니었으므로 장산곶매는 단숨에 그놈의 가슴팍을 파고들어 있는 힘을 다해 날갯죽지를 쪼아버렸다. 그러자 그놈은 힘을 못쓰고 땅으로 곤두박질을 치고 말았다.

 

싸움이 끝나고 난 후 장산곶매는 벼랑 위 낙락장송 위에 앉아 피투성이가 된 지친 몸을 쉬고 있을 때 피냄새를 맡은 큰 구렁이가 나타났다. 그리고는 장산곶매가 앉아 있는 나무를 감고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장산곶매더러 빨리 날아오르라고 막 소리를 지르며 꽹과리를 쳐댔으나, 장산곶매는 졸고만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장산곶매 어릴 적에 마을을 지키는 새라고 발목에 끈을 매어 표시를 해 놓았었는데, 그게 나뭇가지에 걸렸다. 그런데 장산곶매는 너무 지쳐 그것을 끊을 수 없어서 날아오르지 못했던 것이다. 장산곶매는 한 쪽 발을 들고 졸고 있었는데 구렁이가 막 덤비는 순간 들고 있던 한쪽 발로 구렁이의 눈을 공격하고 그 놈이 휘청거릴 때 부리로 머리통을 쪼아 버렸다.

 

마을 사람들이 기뻐 함성을 올리는 순간 장산곶매는 하늘로 힘차게 날아 올랐다. 그때 동편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며 마을에는 어둠이 걷히기 시작하였다. 출처: 장산곶매 이야기(백기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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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古木)/Mt Whitney, 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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