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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겨온 글

축의금 만 삼천원

by 캘리 나그네 2020. 5. 21.

 

* 이 책을 쓰는 데 가장 큰 용기를 준 사람은 내 친구 형주다. 친구 형주와의 눈물겨운 이야기 하나를 말미에 남긴다.

 

 

- 축의금 만 삼천 원

 

10년 전 나의 결혼식 날이었다. 결혼식이 다 끝나도록 친구 형주가 보이지 않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정말 이럴 리가 없는데... 예식장 로비에 서서 형주를 찾았지만 끝끝내 형주는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 때 형주 아내가 토막 숨을 몰아쉬며 예식장 계단을 급히 올라왔다. "고속도로가 너무 막혀서 여덟 시간이 넘게 걸렸어요. 어쩌나, 예식이 다 끝나 버렸네..." 숨을 몰아쉬는 친구 아내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석민이 아빠는 오늘 못 왔어요. 죄송해요... 대신 석민이 아빠가 이 편지를 전해 드리라고 했어요." 친구 아내는 말도 맺기 전에 눈물부터 글썽였다.

 

엄마의 낡은 외투를 뒤 짚어 쓴 채 등 뒤의 아가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 철환아, 형주다. 나 대신 아내가 간다. 가난한 내 아내의 눈동자에 내 모습도 함께 담아 보낸다.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사는 리어카 사과 장사이기에 이 좋은 날, 너와 함께 할 수 없음을 용서해다오. 사과를 팔지 않으면 석민이가 오늘 밤 굶어야 한다.

 

어제는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사과를 팔았다. 온종일 추위와 싸운 돈이 만 삼천 원이다. 하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지랑이 몽기몽기 피어오르던 날 흙속을 뚫고 나오는 푸른 새싹을 바라보며 너와 함께 희망을 노래했던 시절이 내겐 있으니까.

 

나 지금, 눈물을 글썽이며 이 글을 쓰고 있지만 마음만은 기쁘다. '철환이 장가간다... 철환이 장가간다... 너무 기쁘다.' 아내 손에 사과 한 봉지 들려 보낸다. 지난밤 노란 백열등 아래서 제일로 예쁜 놈들만 골라냈다. 신혼여행 가서 먹어라. 친구여, 오늘은 너의 날이다. 이 좋은 날 너와 함께 할 수 없음을 마음 아파해다오. 나는 언제나 너와 함께 있다. - 해남에서 형주가

 

편지와 함께 들어있던 만 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세 장... 뇌성마비로 몸이 많이 불편한 형주가 거리에 서서 한겨울 추위와 바꾼 돈... 나는 웃으며 사과 한 개를 꺼냈다. "형주 이 놈, 왜 사과를 보냈대요. 장사는 뭐로 하려고..." 씻지도 않은 사과를 나는 우적우적 씹어댔다. 왜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 것일까... 새 신랑이 눈물 흘리면 안 되는데...

 

다 떨어진 구두를 신고 있는 친구 아내가 마음 아파할텐데... 멀리서도 나를 보고 있을 친구 형주가 마음 아파할까 봐, 엄마 등 뒤에 잠든 아가가 마음 아파할까 봐 나는 이를 사려 물었다. 하지만 참아도 참아도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사람들 오가는 예식장 로비 한가운데 서서... 

 

- 이철환 산문집 '행복한 고물상' 표지 말머리 글.

출처: www.timeforum.co.kr/FreeBoard/890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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