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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음악

소양강 처녀-김태희

by 캘리 나그네 2011. 1. 28.


해 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

외로운 갈대밭에 슬피 우는 두견새야

열여덟 달기 같은 어린 내 순정

너마저 몰라주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동백꽃 피고 지는 계절이 오면

돌아와 주신다고 맹세하고 떠나셨죠

이렇게 기다리다 멍든 가슴에

떠나고 안 오시면 나는나는어쩌나

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유툽에서 동영상보기 ☞ https://youtu.be/e-XYHnGC9Lc

 

 

 

반야월이 작사하고 이호가 작곡한 대한민국의 가요이자 한국인의 대표 애창곡 소양강 처녀. 1970년, 가수 김태희가 불러 큰 인기를 얻었다. 그 당시 앨범 10만 장이 판매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제목을 '춘천 처녀'라고 하려 했으나 어감이 더 나은 '소양강 처녀'로 지었다고 한다. 노래의 배경이 된 소양강은 춘천시내를 흐르는 강이기에 춘천시를 대표하는 가요로 꼽힌다.

 

1990년대 초반, 가수 김재희, 한서경이 리메이크하여 발표했고, 때마침 노래방 열풍이 시작되면서 부르기 쉽고 흥겨운 '소양강 처녀'가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다. 리메이크 된 것을 미처 알지 못한 어른들은 어린 학생들이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네가 이 노래를 어떻게 아느냐'며 당황해했다고도 한다. 소양강 처녀는 지금까지 온 국민에게 사랑받는 애창곡이다.

 

이 노래의 모델이 된 인물은 1969년 당시 가수지망생이었던 윤기순(1953년 생)이라는 인물이다. 반야월이 1990년, KBS의 전국노래자랑과 한 인터뷰에서 소양강 처녀의 노래 모델인 윤기순 씨의 실명을 거론했다. 윤기순 씨는 춘천에서 상경하여 명동 근처에 있던 가요 작가동지회 사무실에서 일했다. 그녀는 7남매(2남5녀)의 맏딸으로 돈을 벌어서 동생들 학비나 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상경을 했다고 한다.

 

전화 교환원을 꿈꾸었던 윤기순은 서울에 도착한 직후 전화 교환원을 양성하는 통신학원에 다녔으나 전화 교환원 월급으로 가족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새로운 일거리를 찾기 위해 한달 만에 통신학원을 그만두었고, 가수가 되면 좋아하는 노래도 할 수 있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김종한 작곡사무실을 찾아갔다고 한다.

 

김종한 씨는 작곡가 박시춘, 작사가 반야월 선생이 소속돼 있는 가요작가 동지회 사무실을 소개해줬고, 그녀는 가요작가 동지회에서 전화도 받고, 심부름도 하면서 노래를 배웠다. 이후 1968년 6월 어느 날 소양강 상류에서 민물고기잡이를 하는 아버지가 사는 춘천의 고향집으로 자신이 일하던 사무실 사람들을 초청하였고, 회장인 반야월 선생을 비롯해 작사가 고명기, 류노완, 월견초 선생 등 가요 작가 사무실 일행 10여 명이 초청에 응했다.

 

이 때 얻은 시상을 반야월이 노랫말로 옮겨서, 작곡 작업과 음반 녹음 작업을 거쳐 1970년에 발표한 노래가 "소양강 처녀"이다. 실제로도 가요작가 사무실 동지회 사람들 사이에서 윤기순 씨의 별명이 '소양강 처녀'였다고 한다. 노래는 크게 히트했지만 정작 주인공인 윤기순 씨는 잊혔고, 그 이후 전국을 돌며 밤무대 가수를 했다고 한다.

 

노래를 너무 불러서 성대결절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고, 돈을 모아 아버지께 젖소를 사드렸지만 우유 파동으로 목장이 망하는 등 험난한 삶을 살았다. 그렇게 잊힌 실제 소양강 처녀는 1995년 노래비를 세울 때 작사가 반야월이 직접 밝힌 뒷이야기로 말미암아 세상에 알려졌다. 춘천시가 경찰청의 협조로 윤기순 씨를 찾아냈을 당시 고향을 떠나 광주에 살고 있었다.

 

그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서 밤무대 가수로 활동하다가, 2006년 어머니를 모시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춘천시 사북면 지암리 집다리골에서 ‘풍전가든’이란 민박을 겸하는 음식점을 경영한다. 춘천시에서는 온 국민에게 사랑받는 애창곡 '소양강 처녀'를 기념하기 위해 2005년, 5억 5천만 원을 들여 소양강 강변에 기념비를 세웠다.

 

또 다른 소양강 처녀의 주인공으로는 1967년 3월, 당시 18세로 춘천여자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경희 씨(1950년 생)라는 얘기도 있다. 박경희 씨는 춘천시 소양1교 인근에서 호수여관과 선박업을 운영하는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당시 반야월 선생은 이 여관에 1달 가량 머무르며 곡을 썼고, 소양강 상류 작은 섬인 고산이라는 곳을 자주 찾았다. 이때 박경희 씨는 반야월을 섬까지 한두 차례 배로 데려다 줬다고 한다.

 

반야월은 여관을 떠날 때, 박경희에게 “네 사연을 노랫말로 썼으니 나중에 레코드가 만들어지면 춘천에 와서 전해 주겠다”는 말을 남기고 호수여관을 떠났다고 한다. 반야월은 생전에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소양강 처녀는 어느 특정 인물의 얘기를 쓴 게 아니라 소양강 인근에 살던 모든 처녀를 주제로 한 것”이라고 밝힌 사실도 있다.

 

박경희씨는 소양강 처녀 노래를 자주 듣지는 않는다고 하신다. 노래를 듣게 되면 그 시절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 가슴이 먹먹해진다고 하신다. 시기상으로도 가사를 지은 것이 두 사람을 모두 만난 후의 일이어서 두 사람 다 반야월의 작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강원도청과 춘천시청에서는 두 사람 모두 소양강 처녀의 주인공으로 인정한다.

 

출처: 소양강 처녀 - 나무위키 (namu.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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