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숙인 채 뜨개질에 열중하고 있는 마눌님의 뒷모습이 무척 생경스럽다. 밥먹는 시간, 운동을 하러 Fitness에 가는 시간을 제외하곤 식탁의 의자에서 일어날 줄 모른 채 뜨개질 삼매경에 빠져있다.
완성해 낸 작품을 보니 예쁘긴 한데 어디에 사용하는 것인지 용도가 궁금하다.
"이걸 어따가 쓸려고 안하던 뜨개질을 하고 있는거야?"
"설겆이 할 때 쓰는 수세미. 세월호 유가족을 북가주에 초청하는데 기금이 부족하대"
"그럼, 이 수세미를 뜨개질 해서 비용에 충당한다는 거야?"
"내가 이걸 떠주면 '세월호를 잊지않는 사람들의 모임(북가주 세사모)'에서 기금조성을 위한 Yard Sale을 할때 한개에 2불 내지 3불씩 받고 판매해서 보탤거래"
"고뤠? 이걸 몇개를 떠서 기부할건데?"
"100개를 목표로 하고있어"
"Oh my god! Jesus Christ. 이삼십도 아닌 백개씩이나? 어느 세월에?"
"쉬엄쉬엄 하루에 열개씩 뜨면 열흘밖에 안걸려"
"쉬엄쉬엄이 아닌데? 하루종일 의자에 앉아 뜨개질을 하면서 그게 무슨 쉬엄쉬엄이야?"
나.원.참...... 할말이 없다. 사서 고생을 한다는 말은 울 마눌님을 두고 하는 소리같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갈 수록 안해도 될 일을 일부러 만들어서 할 필요도 없거니와 이런 저런 사소한 일로 스트레스 또한 받지 말아야 하는데도 우리 마눌님은 스스로 일을 만들어서 눈알이 빠져라 뜨개질을 하고 있다. 게다가 들어가는 노력과 정성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으로 판매를 하신다니...
"매튜엄마. 그냥 돈으로 기부하는게 낫지 이렇게 일부러 고생을 사서 할 필요가 있어?" 내 딴엔 마눌님을 생각해서 해주는 말인데 눈을 크게 뜨고 정색을 하며 대답한다. "여보, 그게 아냐. 당신도 TV에서 보지 않았어? 어린 학생들이 배안에 갇혀서 탈출도 못하고 죽어가는걸... 가라앉는 배를 보며, 자식이 죽어가는걸 뻔히 지켜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울부짖던 부모들. 우리 아이들이 그 배에 갇혀서 죽어갔다면 내 심정은 어땠을까? 난 아마 미쳐 버렸을거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땀 한땀 뜨개질을 하는거야"
얘기를 하는 마눌님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내 자식이, 내가 지켜보는 앞에서, 가라앉는 배에 갇혀 몸부림 치며 죽어갔다면... 맞다. 마눌님의 말씀이 백번 맞는 말씀이고, 아파하는 그 마음 200% 공감한다.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터무니 없는 요구를 하고 있다고.. 종북 빨갱이들이 죽은 자식을 앞세워 돈벌이를 한다고.. 박근혜가 아이들을 죽인것도 아닌데 대통령을 너무 몰아세운다고.
그렇다. 박근혜가 어린 학생들을 직접 죽인건 아니다. 하지만 구조에 실패했다. 그건 간접살인이다. 아이들의 죽음을 방치했다는 표현이 맞을 만큼 무능했던 구조작업. 책임감 없이 입만 나불거리며 우왕좌왕 하던 관계자들. 그들은 살릴 수 있었던 아이들을 단 한명도 구조하지 못했다. 그것이 문제였고 그래서 사람들은 분통이 터져 박근혜정부의 무능을 탓하는 것이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그날 나는 두눈으로 분명히 보았다.
"세월호 침몰. 탑승자 전원 구조" 라는 뉴스 속보의 자막을..
그리고, 나는 또 하나의 실망스런 장면도 보았다. 배가 물속에 잠겨 아이들이 수장됐는데도 금방 잠에서 깨어난듯 부석부석한 얼굴로 나타난 대한민국 대통령의 주둥이에선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발견이 안되는가요?"
배가 침몰 한 후엔 수백여척의 배가 세월호 주변에서 구조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해양경찰청 고위 간부의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은 뻔뻔한 거짓말도 보았다.
국가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줘야 한다. 그러나, 국민의 고귀한 생명을 밭두렁에 깨져있는 꿩알쯤의 존재로 인식하는 듯 내 조국 대한민국 정부는 배에 갇혀 죽어가는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했다. 그러면서 지도자라 자칭하는 사람들은 온갖 불법과 탈법을 서슴없이 저지른다. 궁민(窮民)에겐 의무를 강조하면서... 납세의 의무, 국방의 의무...
내가 그런 참담한 일을 당했다면...? 내 자식이 거기에 있었다면...?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애끊는 심정으로 접근한다면 아주 간단하게 해결 될 일인데도 지도자라 자칭하는 그들은 그런 심정은 접어둔 채 유가족을 불순세력으로 매도하고 있다.
유가족 중에는 경제를 살려 잘살게 해주겠다는 감언(甘言)에 속아 전과 14범 명바기와 독재자 박정희 향수에 빠져 칠푼이 박근혜를 선택했던 분들도 있을텐데 말이다.
국민을 위한 정치는 실종되고, 당리당략에 눈먼 정치꾼들이 득실거리는 난장판에 세월호의 진상규명을 해달라고 요구한 것 자체가 애초에 무리한 부탁이었나 보다. 왜그러는걸까? 진실이 밝혀지는게 두려운건가? 그 진실속엔 도대체 무엇이 숨겨져 있길레? 유가족의 아물 수 없는 깊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며, 그들을 종북 불순세력으로 매도하며, 울 마눌님이 눈알이 빠지도록 뜨개질을 하게 만드는 이유는 뭘까?
다름을 인정하지않고 반대의견을 말하는 사람들을 종북 빨갱이로 몰고 가는 암담한 내 조국. 문장 몇마디와 당리당략에 얽혀 진실규명의 깽판을 놓는 정치꾼들의 행태를 보노라면 "아~!! 씨부럴 조까튼 조국 대한민국을 떠나오길 참 잘했어" 라는 푸념이 저절로 나온다.
진실 규명에서 멀어지는 답답한 현실을 알리고자 미국을 방문하는 유가족을 향해 자기가 당한 일이 아니라고,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막말을 퍼붓는 수구꼴통 똥포(?)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자식이나 손주 손녀가 그렇게 참담하게 죽어갔다고 생각해보세요. 오늘 당장 당신의 자녀, 손자, 손녀가 불의의 사고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 남의 일이 아닙니다. 충분히 일어 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막말을 할 수 있습니까? 당신들도 똑같은 일을 당한다면 인간 말종들이나 할 수 있는 그따위 막말을 하지 않을겁니다."
정치판의 꼬라지나 박그네 정부의 행태를 보노라면 세월호 참사는 미완의 장이 될 확률이 높다. 광주 5.18 민주항쟁의 발포자는 있지만 발포를 명령했던 놈(者)은 밝혀지지 않은 것 처럼. 나는 진상규명의 의지가 안보이는 박그네 정부의 행태를 보며 이런 생각도 해보곤 한다.
대통령이 출산의 고통과 육아의 경험이 없어서 자녀의 소중함을 모르는건 아닌지... 그래서, 자식을 앞세운 애끊는 부모의 심정을 간과하는건 아닌지... 필부에 불과한 나도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으로" 이렇듯 명쾌하게 접근하여 처리할 수 있는 일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는건 아닌지..
멀어지고 있는 진상규명. 그 답답함을 호소해 보겠다고 미국을 방문하시는 유가족 분들이 하시고 싶은 이야기 속시원하게 다 하시고, 건강한 몸으로 무사히 일정을 마치시길 기원해드리면서, 유명을 달리 한 어린 학생들과 승객들의 영면을 다시 한번 기원해드린다. 그리고, 뜨개질을 하느라 고생한 울 마눌에게도 경의를 표하면서, 햇살 좋은 일요일 한낮에 글 같잖은 글을 몇자 끄적거려 본다.
마눌님의 뜨개질 작품이다.
용도는 설겆이 수세미인데 사람들은 컵 받침용으로 사용하겠다며 사갔다고 한다.
울 마눌님의 뜨개질 솜씨가 대단한 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단시간에 이런 작품을 100개씩이나 만들어 냈다는게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실이 조금 남았다며 집에서 사용할 예쁜 컵받침을 만들어서 사용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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