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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겨온 글

강금원의 세 가지 이름

by 캘리 나그네 2021. 1. 30.

가난 딛고 오로지 실력으로 거둔 성공… 우정과 의리의 이름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

 

‘노무현의 영원한 후원자’이자 ‘의리의 남자’로 기억되는 강금원. 그의 생을 세 개의 이름으로 돌아봅니다. 본문의 모든 내용은 강금원 명예이사장의 1주기를 기념해 발간된 책 <강금원이라는 사람>에서 가져왔습니다.

 

 

'어린 가장'

좁은 한옥 골목 창 밑에서 한 소년이 소리쳤습니다. “아이스케이크요! 차갑고 시원한 아이스케이크요!” 외침이 끝나자마자 창들이 열리고 소년을 향한 손들이 밖으로 나왔습니다. 하루에 300개는 너끈했습니다.

 

소년이 태어나기 전만 해도 집안은 유복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고향인 전라북도 부안에서 만석꾼 소리를 들을 정도의 재력과 장사 수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 재산을 쏟아붓다시피 한 비료사업이 망해버리며 소년의 가족은 고향을 등져야 했습니다.

 

가세를 일으키기 위해 집을 떠난 아버지와 부잣집 아이들로 자란 형제들을 대신해 소년은 자연스레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하게 됐습니다. 전주공고에서 들어가 화학공업을 공부하기 시작한 소년은 전공을 살려 필름을 만들어 파는가하면, 소풍 때마다 친구들의 사진을 찍어 한 푼 두 푼을 모았습니다. 사진을 더 잘 팔기 위해 전교생의 이름을 다 외우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번 돈은 가계에 큰 보탬이 됐습니다.

 

'성공한 사업가'

어느덧 청년이 된 소년은 첫 직장에서 염색 전문가가 됐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과 씨름한 결과였습니다. 현장에서 쌓은 실력은 모두에게 인정받을 정도로 탁월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청년은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성실함과 실력 덕분에 사업은 날로 번창했습니다. 사업을 확장하며 그는 부산으로 갔습니다. 회사 이름은 ‘창신섬유’로 바뀌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성공한 기업인이 됐습니다.

 

2001년 즈음 그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골프장 사업이었습니다. 직접 면장갑을 끼고 코스 구석구석을 다듬었습니다. 골프 인구의 증가와 함께 사업도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그런 그였지만 돈을 벌었다고 행세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언제나 스스로에게 인색한 편이었습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도 잊지 않았습니다. 직원들과 마주치면 언제나 마음을 담아 인사를 건넸습니다. 한번 한 약속은 잊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늘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특유의 낙천주의 덕에 그의 얼굴에는 늘 부드러운 미소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의리를 지킨 바보'

아이스케이크를 팔던 소년, 뛰어난 염색 전문가이던 청년이자 남부러울 것 없이 성공한 사업가는 1998년 종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정치인 노무현을 만납니다. 사무실로 찾아온 그는 대뜸 “나는 정치하는 사람한테 눈곱만큼도 신세질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라며 첫마디를 시작합니다. 일생을 같이할 인연의 시작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후 그는 대통령에게 누가 될까 봐 오히려 사업을 축소했습니다. 덕분에 창신섬유는 몇 년 사이 외형이 10분의 1 정도로 줄어들었습니다. 감옥에도 가야 했습니다.양심적이고 투명하게 사업을 운영해온 그였지만 운명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바랐던 건 노무현 대통령이 역사에 성공한 이름으로 남는 것이었습니다.

 

퇴임 후 봉하로 내려간 대통령이 생태마을을 만드는 일에 뜻을 보탰습니다. 매주 봉하에 갈 때는 꼭 넥타이를 맸습니다. 그런 그에게 ‘봉하마을 비서실장’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봉하로 향하는 발길을 끊었을 때도 그만은 변함없이 오랜 벗의 곁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또 한 번의 구속이 그의 봉하행을 가로막았습니다.

 

자신과의 인연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된 그를 떠올리며 노무현 대통령은 글을 하나 썼습니다. ‘강금원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차가운 감옥 안에서 이 글을 읽던 그의 눈에 뜨거운 눈물이 흘렀습니다.

 

어린 가장이 자수성가해 성공한 사업가가 된 이야기는 많습니다. 하지만 의리의 소중함을 알고, 바보 같은 우직함으로 우정을 지킨 이야기는 드뭅니다. 우리가 강금원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그 이름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일 겁니다.

 

 

 

 

 

 

글,사진출처/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knowhow.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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