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사형수가 있었다. 사형을 집행하던 날, 형장에 도착한 사형수에게 마지막으로 5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28년을 살아온 그 사형수에게 주어진 최후의 5분, 짧지만 무척 소중한 시간이었다. 5분을 어떻게 쓸까? 사형수는 고민 끝에 결정을 했다.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작별 기도를 하는데 2분, 오늘까지 살게 해 준 하나님께 감사하고, 곁에 있는 다른 사형수들에게 작별 인사를 나누는데 2분, 그리고 나머지 1분은 눈에 보이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최후의 순간까지 서있게 해 준 땅에 감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흐르는 눈물을 삼키면서 가족과 친구들을 생각하며 작별 기도를 하는데 2분이 지나가버렸다. " 아! 이제 3분 후면 내 인생도 끝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지나간 28년을 금쪽처럼 아껴 쓰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다시 한번 인생을 살 수 있다면..." 하고 회한(悔恨)의 눈물을 흘리는 순간 사형집행 중지명령이 내려져 기적처럼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구사일생으로 풀려 난 그는 사형집행 직전에 주어졌던 5분의 시간을 생각하며 평생 동안 '시간의 소중함'을 잊지 않고, 하루, 하루.. 매 순간의 시간을 마지막처럼 생각하며 열심히 살았다고 한다.
그 결과,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영원한 만남' 등 불후의 명작을 발표하여 톨스토이에 비견되는 세계적 문호로 성장하였다고 한다. 그 사형수는 바로 "도스토예프스키"였다. - 퍼온 글-
도스토옙스키 (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 소설가
출생-사망 1821.11.11 ~ 1881.2.9
데뷔 1846년 장편소설 '가난한 사람들'
국적: 러시아. 출생지: 모스크바
활동분야: 문학
주요 저서: 《죄와 벌》(1866) 《백치》(1868) 《악령(惡靈)》(1871∼1872)
톨스토이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문호이다. ‘넋의 리얼리즘’이라 불리는 독자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내면을 추구하여 근대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농노 제적(農奴制的) 구질서가 무너지고 자본주의적 제관계(諸關係)가 대신 들어서려는 과도기의 러시아에서 시대의 모순에 고민하면서, 그 고민하는 자신의 모습을 전적으로 작품세계에 투영한 그의 문학세계는 현대성을 두드러지게 지니고 있으며, 20세기의 사상과 문학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빈민구제 병원 의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도시적인 환경 속에서 자라났다. 이 점이 바로 러시아 도시 문학의 선구자로서의 그의 위치를 굳히게 하는 한편, 훗날의 토양주의(土壤主義:러시아 메시아니즘)의 주장에서 엿보이는 바와 같은 농민 이상화의 경향마저 그에게서 싹트게 하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문학을 좋아하여, 특히 W. 스콧의 환상적이며 낭만적인 전기와 역사소설에 흥미를 느꼈다. 16세 때 상트페테르부르크 공병 사관학교에 입학했고 졸업한 다음에는 공병국에 근무했으나, 싫증을 느껴 1년 남짓 있다가 퇴직했는데, 때마침 번역 출간된 발자크의 《외제니 그랑데》가 호평을 받은 데 힘을 얻어, 직업 작가에 뜻을 두게 되었다.
그의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1846)은 도시의 뒷골목에 사는 소외된 사람들의 사회적 비극과, 그들의 심리적 갈등을 그려낸 중편으로서, 사실주의적 휴머니즘을 기치로 하였던 당시 비평계의 거물인 V.G. 벨린스키에게 인정되어, 24세의 무명작가는 일약 ‘새로운 고골’이라는 문명을 떨치게 되었다.
곧이어 발표한《분신(分身)》(1846)과 《주부》(1847) 등은 벨린스키로부터 심리주의로의 병적인 경향이 있다고 지적되어 호평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는 이 무렵부터 공상적 사회주의 사상에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백야(白夜)》(1848) 《네트치카 네즈바노바》(1849) 등의 가작을 씀으로써, 인간의 정열의 여러 모습을 탐구하는 한편, F.M.C. 푸리에의 공상적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M.V. 페트라셰프스키의 서클로 접근해 갔다. 이 시기의 혁명가들과의 교류는 그의 생애를 통해 그의 창작활동에 큰 흔적을 남기게 된다.
1849년 봄 페트라셰프스키 사건에 연좌되어 다른 서클 회원과 함께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총살 직전 황제의 특사로 징역형으로 감형되어 시베리아로 유형되었다. 시베리아의 옴스크 감옥에서 지낸 4년간의 생활은, 그가 인도주의자 ·공상적 혁명가에서 변모하여 슬라브적인 신비주의자 ·인종 사상(忍從思想)의 제창자로 사상적 전신(轉身)을 하게 되는 시기였다.
출옥 후 5년간, 중앙아시아에서 사병으로 근무하는 동안 M. 이사 에바와 결혼하고, 1859년 말 10년 만에 수도 페테르부르크로의 귀환이 허락되었다. 귀환 후 농노해방을 눈앞에 두고 고조된 사회적 분위기에서 형인 미하일과 함께 잡지 《시대》를 창간, 시사문제를 집필하는 한편, 시베리아 옥중생활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독특하고 참신한 장편 《죽음의 집의 기록》(1861∼1862)과, 그의 전기(前期) 창작의 총결산이라고 할 수 있는 《학대받은 사람들》(1861)을 발표함으로써, 문단으로의 복귀를 확고하게 하였다.
그다음의 수년간은 농노해방 뒤에 야기된 정치적 반동과 사회적 환멸의 한 시대로서, 또한 그의 개인생활에도 중대한 사건이 겹친 시기였다. 즉, 1862년의 그의 첫 서유럽 여행, 애인 스 슬로 바와의 이상한 연애 체험, 1864년의 그의 아내와 형의 죽음 등이 그것이다. 이것은 그의 문학상의 전기(轉機)가 되었으며, 후기의 대작들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일반에게 인정되는 중편 《지하 생활자의 수기》(1864)가 이 시기에 써진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1864년 잡지 《에포하》를 발행했으나 완전히 실패하여 그는 거액의 빚만 짊어지게 되어 생활이 좀처럼 안정되지 않았다. 1867년 중편 《노름꾼》(1866)의 구술(口述)이 계기가 되어 사귀게 된 속기사 안나 스니트키나와 재혼한 뒤로는, 빚쟁이의 추궁을 피해 4년이나 해외생활을 보내야만 했다. 이 궁핍한 생활 속에서 그의 명성을 불후의 것으로 남기게 되는 《죄와 벌》(1866) 《백치》(1868) 《악령(惡靈)》(1871∼1872) 그리고 중편 《영원한 남편》(1870) 등을 발표했다.
러시아로 돌아와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된 그의 만년의 10년간은 장편 《미성년》(1875)과 그의 생애를 통한 사색의 집대성이라고 할 만한 《카라마조프의 형제들》(1879∼1880) 이외에도, 1873년 이후 시사적 수상(隨想)과 문예 평론 ·단편 등을 포함한 자유형식의 문집 《작가의 일기》를 썼다. 그가 죽기 반년쯤 전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동상 제막식에서 행한 기념강연은, 열광적인 환영을 받아 불우했던 그의 만년을 장식해 주었다.
《죄와 벌》로 시작되는 그의 후기의 대작은 시대의 첨단적인 사회적 ·사상적 ·정치적 문제를 예민하게 반영시킴과 동시에, 인간 존재의 근본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던 점에 그의 특색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이론적 살인자 라스 콜니 코프에 있어서의 인간을 추구한 《죄와 벌》, 조화와 화해를 초래할 아름다운 인간 미슈 킨 공작(公爵)의 패배를 묘사한 《백치》, 네차예프 사건에서 소재를 얻어 혁명의 조직과 사상의 병리를 묘사한 《악령》, 청년의 야심적 생태를 다룬 《미성년》, 존속살해범을 주제로 신과 인간의 문제를 정면으로 대결시킨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등, 각 작품에서 다룬 소재가 다르면서도 총체적으로는 내면적인 통일성으로 굳게 연결되어 있는 점에서, ‘도스토 옙 스키적인 세계’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것이다.
《죄와 벌》의 양극적(兩極的)인 인물상(人物像)인 소냐와 스비드리가 일 로프는 각기 《백치》의 미슈 킨 공작, 《악령》의 스타브 로긴으로 계승되며, 나아가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의 조시마 장로와 이반의 대결로 발전하는 것 등이 한 예로서, 그의 작품세계의 인물들은 한결같이 이 세상에서 사는 사람이 필연적으로 짊어져야 하는 ‘긍정과 부정’의 상극을 작가 자신과 더불어 체현시킨 것이라 하겠다. 이 상극의 생생함을 ‘폴리포닉 한 로망’ 형식 속에 그대로 재현시킬 수 있었던 점에서 바로 도스토옙스키의 천재성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가 러시아뿐만 아니라 세계문학과 사상에 끼친 영향은 매우 광범위한 것이지만, 특히 현저한 것으로는 F.W. 니체에서 현대의 실존주의자에 이르는 사상의 계보를 들 수 있다. 러시아에서는 온갖 적극성을 부정하는 수난의 철학을 신봉하는 자로서 도스토옙스키를 반동 작가로 규정하여 왔으나, 근자에 이런 견해는 다소 약화되어 그의 저작집 등도 새로 출판이 허용되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1980년 도스토옙스키 전집(전 7권)이 정음사에서 간행되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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