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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머문 곳

뜨거운 여름, 만년설에 오르다(둘째 날)

by 캘리 나그네 2019. 6. 14.


Helen lake(Base Camp)에 텐트를 설치하고 눈을 녹여 물병을 채운다. 집에서 가져온 샌드위치로 저녁식사를 마친 후 침낭속에 누우니 몸에서 땀이 난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 잠이 들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니 새벽 4시, 옆 텐트에서 등정(登頂)준비를 하는지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물을 끓여 아침을 먹고 가져온 작은 배낭에 물과 간식을  챙겨 넣은 후 Gater와 Crampons을 착용하니 5시 50분. 마눌에게  내 발자욱을 밟으며 천천히 따라오라 하고 경사가 심한  Red Banks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경사가 극심한 Red Banks 


걸음을 옮길 때마다 결빙(結氷)된 눈속을 파고드는 크램폰이 청량한 소리를 낸다. 힘에 겹다. 2017년 5월 27일 샤스타 정상을 밟았을 때보다 몇배는 더 힘든 것 같다. 체력유지를 하기 위해 1주일에 한두 번 Mission Peak을 오르내렸는데도 숨이 턱에 차오른다. 


옛 뇬네들이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고 하던 말씀이 허튼소리는 아닌 듯 2017년과 2년이 지난 오늘의 체력에 차이가 있는 것을 몸으로 느끼는 중이다.


'잘 따라오고 있나?' 하고 뒤돌아보면  마눌님은 말 한마디 없이 우보천리(牛步千里)보행으로 내 발자욱을 쫒아 열심히 올라오고  있다. 다리에 쥐나지 않고 경사가 심한 Red Banks를 무사히 올라갈 수 있을까 하고 염려했던 것이 기우(杞憂)에 불과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마눌이 고마울 뿐이다.


급경사의 Red Banks를 열심히 오르고 있는 마눌님  




서울 우이동 도선사(道詵寺)에서 백운대 등반을 하다보면 숨이 '깔딱!'하고 넘어간다는 일명 '깔딱고개'가 있다. 젊었을 때 백운대 등반을 하면 '깔딱고개'를 넘는데 30여분(?)가량 소요된 것 같은데 Red Banks는 무려 2시간이 넘게 걸릴만큼 경사가 심하고 힘이 든다. 


손에 잡힐 듯 보이는 Red Banks을 보며 젖먹던 힘까지 쏟지만 차가운 공기 속에서 가쁘게 숨을 몰아쉰 때문인지 목구멍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낀다.



힘들게 올라온 Red Banks에서 간식으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목을 축이는데 마눌이 경사진 능선(↑)을 가르키며 '저기로 올라가는거야?'하고 묻는다. 표정을 보니 질린 것 같다.  '저건 Red Banks에 비하면 Piece of cake이야. 천천히 올라가도 1시간이면 충분해' 하고 안심을 시키니 가는 데까지 가보자며 몸을 일으키는 마눌의 모습이 애잔하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면서 '죽을둥 살둥'이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한 가지 일에 마음을 빼앗겨 다른 일은 돌아보지 않고 마구잡이로 덤비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죽을둥 살둥 올라서 벌거벗은 듯한 모습으로 버팅기고 있는 봉우리를 보더니  "저기가 정상이야?"  "아니, 저 봉우리를 올라가야 정상이 보여" 


"에휴!!  이제 올라가는 것도 지겹다. 기운없어 쓰러질 것 같다"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올라가는 마눌이 대견스럽다. 마눌은 얼굴을 보지않고도 내 마음을 읽어내는 여자다. 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 트래픽 심한 Freeway를 운전하면서 '잘 삶은 돼지 수육에 쏘주 한잔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집에 가면 전화를 하지 않았어도 돼지 수육 한 접시에 쏘주 한병을 곁들여 식탁을 차려주는 '쪽집게 도사' 같은 여자다.ㅎ



샤스타 정상이 보이는 이곳은 경사가 거의 없는 평탄한 지면이다. 여기까지 왔으면 100% 정상에 올라 설 수 있다. 이제 30분만 더 가면 정상에 올라설 수 있으니 조금만 더 힘을 내라고 마눌을 응원하지만  2017년에는 느끼지 못했던 호흡이 곤란할 정도로 풍기는 유황냄새에 내가 구역질을 한다. 화산 폭발이 가까워진 것일까?



죽을둥 살둥 샤스타 정상을 밟았다. 신혼여행을 설악산으로 갈 만큼 산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눌은 헬멧, 썬글라스, 천으로 감싸고, 썬블락 로션을 발랐어도 얼굴에 화상을 입었다. 그래도 정상을 밟았다는 성취감때문인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스키를 맨 젊은 커플  ↓ 남자의 어머니 생일 기념으로 스키를 타고 정상을 내려간다고 한다. 


인생을 살면서 단정적인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지만 지금 심정으론 두번 다시 샤스타를 오를 일이 없을 것 같다. 설령, 아버지가 살아오신다 해도 오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으며, 샤스타는 이제 추억으로만 간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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