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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음악

부용산-안치환

by 캘리 나그네 2014. 6. 28.

 

 

 

스마트폰에서 동영상보기  ☞  https://youtu.be/nlaqiJZxH3Q

 

 

 

 

 

가곡 '부용산' 유래

 

일본 관서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박기동 시인의 꽃같이 사랑스럽고 짧은 생애를 마친 누이동생(박영애)의 죽음을 보면서 그 애달픈 심정을 시로 쓴 것으로 월북 작곡가 안성현씨가 곡을 붙여 놓았다.

 

이 시에 곡을 붙힌 사연은 박기동시인이 목포 항도여중 재직중 문학도였던 제자 김정희가 폐결핵으로 죽자 제자의 죽음을 슬퍼하던 중 동료교사였던 안성현 선생이 박기동 선생이 써 놓은 시를 보고 여기에 곡을 붙여 "부용산" 노래를 완성하였다.

 

 

가곡'부용산'가사

 

1절 - 부용산 오리길에 잔듸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사이로 회오리 바람타고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채 병든 장미는 시들어지고

부용산 봉우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2절 - 그리움 강이되어 내가슴 맴돌아 흐르고

재를 넘는 석양은 저만치 흘러섰네

백합일시 그 향기롭던 너의 꿈은 간데 없고

돌아서지 못한채 나외로이 서있으니

부용산 저멀리엔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박기동 선생 약력

 

1917년 10월 20일 여수군 돌산면 둔전리 517번지 출생

1929년 국민학교 4학년때 돌산에서 벌교 보통학교 4학년으로 전학

1931년 벌교보통학교(벌교남국민학교 전) 6회 졸업

1931년 벌교에서 국민학교 졸업후 일본으로 건너가 중,대학을 일본에서 학업을 마침.

1943년 일본관서대학 영문학과 졸업후 벌교로 귀국

1943년 10월 벌교 남국민학교(현, 벌교초등학교)교사로 부임

1943년 10월 ~ 1946년 1월 31일까지 3년 9개월동안 벌교남국민학교 재직

1946년 2월 1일 광주 서석국민학교 발령

1946년 2월 1일 ~ 1946년 11월 14일 광주 서석국민학교 재직

1946년 11월 15일 벌교 공립초급중학교 발령(벌교 상업중학교)

1946년 11월 15일 ~ 1947년 3월 31일 벌교공립초급중학교 재직

1947년 4월 1일 순천 사범학교 재직

1948년 초 목포항도여중 전근(현 목포여자고등학교)

1951년 교직생활 마감하고 상경하여 출판사에서 근무

1993년 호주 시드니에 거주2003년 영구귀국

2004년 5월 9일(87세) 별세

 

출처: 녹차수도 보성boseong.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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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소리 내어 부르지 못하고 가슴속으로만 불렀던 노래 <부용산>이 50여년 만에 노래비로 부활했다. 아름다운 노래말과 애절한 곡조로 사랑받았던 노래 <부용산>의 시비가 2000년 10월1일 전남 보성군 벌교읍 부용산 오리길에 세워진 것. 제막식에는 노랫말을 쓴 시인 박기동(82,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거주)씨와 작곡가 고 안성현의 미망인 송동을씨 등 많은 출향민들이 모여들었다.

 

*월북 안성현 작곡이라는 이유만으로 <부용산>은 박기동씨가 1947년 스물네살 꽃다운 나이에 폐결핵으로 요절한 누이의 주검을 묻고 돌아와 쓴 시에 목포 항도여중에서 함께 재직하던 안성현(월북 <엄마야 누나야> 작곡가)이 1948년 곡을 붙인 노래다. 수년 전, 노동부 장관을 지냈던 남재희씨가 어떤 인터뷰에서 남도에서 <부용산> 모르면 간첩이라며 열창할 정도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곡이다.

 

부용산 산허리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 사이로 회오리 바람 타고/ 간

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너만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붉은 장미는 시들었구나/

부용산 산허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노래 <부용산>은 해방과 전쟁 뒤 폐허라는 당시 상황과 어우러져 당대의 최대 히트곡이 됐지만 작곡가 안성현이 월북하면서 지하에 묻히고 말았다. 한국전쟁 때 작곡가 안성현이 무용가 최승희와 함께 월북하자 이 노래도 공식무대에서 사라진 것이다. 게다가 당시 빨치산이 즐겨 불렀다는 이유로 가슴과 가슴속에서만 불려지게 되었다.

 

"노래가 자신들의 신세와 비슷해서 그들이 즐겨 불렀던 것 같아요. 작곡가 안성현은 목포항도여중 교사 시절 저와 단짝이었는데, 예술을 좋아하는 <엄마야 누나야> 같은 낭만주의자였어요." 박 시인은 안성현의 아름다운 곡조 때문에 <부용산> 시가 살았다며 작곡가에게 그 공을 돌렸다.

 

이런 <부용산>의 사연이 지식인들에게 알려지면서 노래는 빛을 보기 시작했다. 1997년 가수 이동원과 안치환에 의해 처음 무대에서 불려졌고 2000년 5월13일과 14일에는 삶과 꿈 싱어즈에 의해 포항공대와 포스코 공연에서 합창으로 소개됐다.

 

또 5월29일에는 전남 목포에서 열린 소프라노 송광선(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초청음악회에서 불려졌다. 송광선씨의 초청음악회는 오스트레일리아에 살던 박기동 시인이 가사 1절이 나온 지 52년 만에 2절을 보내와 처음으로 공개된 자리이기도 했다. 가사 2절에는 1절의 애상과 슬픔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출처: 네이트 지식http://ask.nate.com/qna/view.html?n=32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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