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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이는 글

Coffee에 관한 안좋은 추억(追憶)

by 캘리 나그네 2016. 11. 20.

 

 미국에 이민을 온지 어느덧 30년이 되었

다. 처음 이곳에 와서 미국인들이 아침 출근 길에 운전을 하면서 머그컵에 담긴 커피를 마시는 걸 보고 미국인들에게 커피란 뗄레야 뗄 수 없는, 물처럼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류 인종과 마찬가지로 우리같은 소수 이민자들 역시 커피를 즐겨 마시며, 하룻동안 쌓인 피로를 커피로 푼다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다지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내가 커피를 마시는 경우는 아침 식사때나 점심을 먹은 후 옅은 블랙(보리차보다 약간 진하게)으로 한잔 마시는 것 외엔 커피를 즐기지 않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 싶다. 

 

 간혹 한국을 방문하면 시차로 인한 잠을 쫒기위해 물을 들이키듯 커피를 마시기도 하지만, 이곳에선 아침과 점심 한잔으로 만족하며, 이따금 몸이 나른하고 머리속이 어수선해진 오후에  설탕과 크림이 들어간 달달한 커피를 마시면서 헝클어진 생각을 정리하는 경우도 있지만 울 마눌님 처럼 하루에도 몇차례씩 커피를 마시지는 않는다.

 

 내가 많은 사람들이 즐겨마시는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있는데 사연인 즉슨 이렇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건강한 남자라면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한가지 의무가 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병역의 의무다.

 

 물론, 태어날때 부터 금수저를 물고 나온 선택받은 놈들에겐 다른나라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처럼 힘없고 돈없고 빽없고 아무런 연줄도 없는 보통의 부모에게서 태어난 놈들은 어쩔 수 없이 타의에 의해 반드시 가야 하는 곳이 군대다. (끌려간다고 하는게 더 적절한 표현이겠다)

 

 1970년대 중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 초 어느날,  나는 눈물을 훔치시는 어머니의 전송을 받으며 고향친구들과 논산에 위치한 육군 제2 훈련소에 입대했다. 소속은 훈련소 법당 옆 23연대.  기초 군사훈련을 끝낸 7월 하순이었던가?  하두 오래전의 일이라 기억이 흐릿하지만 각개전투 훈련을 받았던 그때가 장마철이었는지 연일 비가 내렸다.  안좋은 기억이 있던 그날도 우리 훈련병들은 총알처럼 빠르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그 유명한 황하교장(각개전투 교육장)으로 교육을 받으러 갔다.

 

 교장으로 가는 도중 훈련 조교들은 우릴 그냥 내버려 두질 않고 빗물이 흐르는 시뻘건 황토 길에서 좌로 굴러, 우로 굴러, 포복앞으로... 빗물에 생긴 작은 개울이나 웅덩이가 나타나면 뒤로 취침, 앞으로 취침을 시키면서 저희들끼리 낄낄대며 우리 훈련병들을 진흙탕에 뒹구는 축구공 취급을 한다.  다시 말해 우린 조교 새끼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이었던 것이다.

 

 조교들의 시달림 속에 시뻘건 황톳물에 팬티까지 흥건하게 젖은 채 교장에 도착해 앉으니 엄습하는 추위가 장난이 아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후 그토록 심하게 추위를 느낀 것은 아마 그날이 처음이었을 게다. 

 

 이빨을 부딪히며 사시나무 떨듯 오들오들 떨고 있는 와중에 내 머리속엔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커피가 그려지고, 친구들과 다방에 앉아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히히덕거리시간들이 떠오른다. 세 스푼의 설탕과 크림을 넣은 뜨거운 커피를 한잔 마시면 사시나무 처럼 떨리는 추위가 없어질 것 같아 나는 못견디게 커피가 마시고 싶어진다.

 

 추위에 떨면서 뜨거운 커피를 생각하고 있는 그때 반짝이는 소위 계급장을 달고, 교관이라 적혀있는 헬멧을 쓴 소대장이 교단에 올라서더니 쭈그리고 앉아있는 훈련병을 한명씩 지명하면서 지금 가장 절실한 소원을 말해 보란다.

 

 2년제 3사관 학교 출신인 녀석이 소위 임관 후 훈련소 소대장의 보직을 받고서, 뺑이 치며 훈련을 받고있는 우리의 처지하곤 정반대인 자신의 신분를 과시하고 싶어서였는지 녀석은 얼굴에 야비한 웃음을 지으며 우리들에게 소원 한가지씩을 말해보라는 것이다.

 

 온몸이 홀딱 젖어 추위에 떨고 있는 훈련병들의 입에선 별의별 소원이 쏟아져 나온다. 많은 소원중에서 가장 많은 공감을 얻었던 소원은 따뜻한 아랫목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있고 싶다는 것과, 뜨끈한 국물이 넘치는 라면 한그릇을 먹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중엔 애인이 보고 싶다는 녀석도 있었지만..ㅎ

 

 내차례가 되었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그 순간까지 머리속에 그리고 있던 뜨거운 커피를 한잔 마시고 싶다 말했고 내 소원을 들은 소대장 녀석은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나더러 눈썹이 휘날리게 앞으로 뛰어 나오란다. 추위에 잔뜩 웅크린 몸을 일으켜 앞으로 나간 나에게 녀석은 "이 새끼가 아직 군기가 덜 들었구만!" 하면서 황토묻은 군화발로 쪼인트(무릎아래 정강이 뼈)를 무지막지하게 가격한다.

 

 피할 겨를도 없이 연거푸 들어오는 군화발에 헤아릴 수 없을만큼 쪼인트를 차이고 나니 엄습하던 추위는 사라지고, 억울함과 함께 가슴속에선 녀석에 대한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치밀어 오른다.

 

 그날은 음력으로 내 생일이었다. 생일날 허벌나게 쪼인트를 까였다는 것과 훈련병들을 인간취급도 안하는 소대장 녀석에 대한 분노는 그 당시 내가 갖고 있던 M-1 소총에 총알이 장전되었다면 녀석의 머리통에 작은 공기구멍을 내고도 남았을 것이다.  개노무 새끼... 소원을 물어서 가장 절실했던 것을 말했을뿐인데 무자비하게 군화발로 쪼인트를 까다니...

 

 오전 교육을 마치고 찾아온 점심시간.  녀석을 죽이고 싶은 분노를 삭힐 수가 없어 점심도 거른 채, 황토 흙으로 범벅이 된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려 쓰라린 쪼인트를 살펴보니 이런 엠병헐...  군데군데 피부가 까진 곳엔 핏물이 보이고 쪼인트의 색깔은 짙은 자줏빛으로 변해있다. 영어로 말하면 Deep Purple이 되었다는 얘기다.

 

 내가 훈련을 받던 그 당시엔 점심시간이나 하루 일과가 끝나고 난 후엔 사회에서 즐겨들었던 팝송이나 통기타 가수들의 노래를 들려주곤 했는데, 그 순간 훈련장의 확성기에선 사회에서 무쟈게 듣고 가사를 외우다시 했던 Deep Purple이 부른 Soldier of Fortune 이란 팝송이 흘러 나온다.

 

 나는 그날 이후 비가 오는 날 커피를 마실라치면 여지없이 안좋았던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커피맛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하고, 식어버린 커피를 물을 들이키듯 후다닥 마셔버리곤 한다.

 

 이제 군대를 제대한지 어느덧 40년이 되어가건만, 나는 지금도 일년에 한두번은 군대에 끌려가는 꿈을 꾸곤 한다, 어느날 꿈엔  막내동생이 군대를 간다고 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 내가 동생을 대신해 군입대를 다시 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사는 북가주의 겨울은 추수감사절 언저리 부터 우기가 시작되어 이듬해 3월 말 까지 비가 내린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운치있는 분위기 속에서 향긋한 커피를 음미하며 추억을 되새겨 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한잔의 커피를 마시고 싶어그때의 안좋았던 기억때문에 나는 창문을 때리는 빗방울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이미지 출처: 페이스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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