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겨온 글

가을 노트-문정희

캘리 나그네 2024. 11. 21. 05:14

 

그래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에는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몸을 떨었다 

 

못다한 말 

못다한 노래 

까아만 씨앗으로 가슴에 담고 

우리의 사랑이 지고 있었으므로 

 

머잖아 

한잎 두잎 아픔은 사라지고 

기억만 남아 

벼 베고 난 빈 들녘 

고즈넉한 

볏단처럼 놓이리라 

 

사랑한다는 것은 

조용히 물이 드는 것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홀로 찬바람에 흔들리는 것이지 

 

그리고 이 세상 끝날 때 

가장 깊은 살속에 

담아가는 것이지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옷을 벗었다 

슬프고 앙상한 뼈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