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에 관한 안좋은 추억
이민 온 지 어느덧 30년이 되어 간다. 처음 미국에 와서 아침 출근길에 운전을 하면서 머그컵에 담긴 커피를 마시는 미국인들을 보며 그들에게 커피란 떼려야 뗄 수 없는, 물처럼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같은 소수 이민자들도 커피를 마시며 하루 동안 쌓인 피로를 푼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다지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커피를 마시는 경우는 아침 식사 때나 점심 식사 후 옅은 블랙(보리차보다 약간 진하게)으로 한잔 마시는 것 외엔 거의 마시지 않는다. 간혹 한국을 방문하면 시차로 인한 잠을 쫓기 위해 자주 마시기도 하지만 이곳에선 아침, 점심 한잔으로 만족하며 가끔 몸이 나른한 오후 설탕과 크림이 들어간 달달한 믹스 커피를 마시며 생각을 정리하는 경우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즐겨마시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사연인즉슨 이렇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성장한 건강한 남자라면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의무가 있는데 그것은 병역의무다. 금수저를 물고 나온 선택받은 놈들에겐 다른 나라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처럼 힘없고 돈없고 빽없는 부모에게서 태어난 놈들은 타의에 의해 끌려가는 곳이 군대다.
1970년대 중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 초 어느 날, 눈물을 훔치시는 어머니의 전송을 받으며 고향친구들과 논산에 있는 육군 제2 훈련소에 입대했다. 소속은 훈련소 법당 옆 23연대. 기초 군사훈련을 끝낸 7월 하순이었던가? 하두 오래전의 일이어서 기억에 흐릿하지만 각개전투 훈련을 받던 때가 장마철이었는지 연일 비가 내렸다.
안좋은 기억이 있던 그날도 우리 훈련병들은 총알처럼 빠르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그 유명한 황하교장(각개전투 교육장)으로 교육을 받으러 갔다. 교장으로 가는 도중 조교들은 빗물이 흐르는 시뻘건 황토 길에서 포복 앞으로, 좌로 굴러, 우로 굴러, 오리걸음을 시키며 우릴 그냥 내버려 두질 않았다.
작은 개울이나 웅덩이가 나타나면 뒤로 취침, 앞으로 취침을 시키면서 훈련병들을 진흙탕에 뒹구는 축구공 취급을 한다. 우린 조교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이었던 것이다. 조교들의 시달림 속에 황톳물에 팬티까지 흥건하게 젖은 채 교장에 도착해 앉으니 엄습하는 추위가 장난이 아니다. 머리에 털난 이후 그토록 심하게 추위를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이빨을 부딪히며 사시나무 떨듯 오들오들 떨고 있는 와중에 머릿속엔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커피가 그려지고, 친구들과 다방에 앉아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히히덕거리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세 스푼의 설탕과 크림을 넣은 뜨겁고 달달한 커피 한잔 마시면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추위가 없어질 것 같아 못견디게 커피가 마시고 싶어졌다.
추위에 떨면서 커피를 생각하고 있는 그때 반짝이는 소위 계급장과 교관이라 적혀있는 헬멧을 쓴 소대장이 교단에 올라서더니 한명씩 지명하면서 가장 절실한 소원을 말해 보란다. 3사관학교 출신인 녀석이 임관 후 훈련소 소대장의 보직을 받고 뺑이 치며 훈련받고 있는우리하곤 정반대인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고 싶어서였는지 야비한 웃음을 띄며 소원을 말해보라는 것이다.
온몸이 홀딱 젖어 추위에 떨고 있는 훈련병들의 입에선 별의별 소원이 쏟아져 나온다. 많은 소원 중에서 가장 공감을 얻었던 소원은 따뜻한 아랫목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있고 싶다는 것과 뜨끈한 국물이 있는 라면 한 그릇을 먹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중엔 애인이 보고 싶고 엄마가 보고 싶다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생각 없이 머릿속에 있던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싶다 했고 소대장 녀석은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나더러 눈썹이 휘날리게 앞으로 뛰어나오란다. 추위에 웅크리고 있던 몸을 일으켜 앞으로 나간 내게 녀석은 "이 새끼가 아직 군기가 덜 들었구만!" 하면서 황토 묻은 군화발로 내 쪼인트(무릎아래 정강이 뼈)를 무지막지하게 가격한다.
피할 겨를도 없이 연거푸 들어오는 군홧발에 차이고 나니 추위는 사라지고 억울함과 함께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날은 음력으로 내 생일이었다. 생일날 허벌나게 쪼인트를 까였다는 것과 훈련병들을 인간취급 안 하는 녀석에 대한 분노는 갖고 있던 M-1 소총에 총알이 장전되었다면 머리통에 작은 공기구멍을 냈을 것이다. 개노무 새끼.. 소원을 물어서 절실했던 것을 말했을 뿐인데 무자비하게 쪼인트를 까다니..
오전 교육을 마치고 찾아온 점심시간, 소대장 녀석을 죽이고 싶은 분노를 삭일 수가 없어 점심도 거른 채 황토 흙으로 범벅이 된 바짓가랑이를 걷어올려 쓰라린 쪼인트를 살펴보니 이런 엠병헐.. 피부가 까진 쪼인트엔 핏물이 보이고 색깔은 짙은 자줏빛이다. 영어로 Deep Purple이 되었던 것이다.
내가 훈련을 받던 그 당시엔 점심시간이나 하루 일과가 끝나면 사회에서 즐겨 들었던 팝송이나 통기타 가수들의 노래를 들려주곤 했는데, 그 순간 훈련장의 확성기에선 사회에서 무지하게 들었고 가사를 외워 혼자서 흥얼거리기도 했던 Deep Purple이 부른 Soldier of Fortune 이란 팝송이 흘러나온다.
나는 그날 이후부터 비가 오는 날 커피를 마실라치면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커피맛을 음미하지 못하고 물을 들이키듯 후다닥 마시곤 한다. 이제 군대를 제대한지 어느덧 40년이 되어가건만, 지금도 일 년에 한 두번은 군대에 끌려가는 꿈을 꾸고, 어느 날엔 막내동생이 군대를 간다고 해 안타까운 마음에 동생을 대신해서 입대를 다시 하는 경우도 있다.
북가주의 겨울은 추수감사절 부터 우기가 시작되어 이듬해 3월 말 까지 비가 온다. 내리는 비를 보며 운치 있는 분위기 속에서 향긋한 커피를 마시며 추억을 되새겨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한잔의 커피를 마시고 싶어도 그때의 안 좋았던 기억 때문에 창문을 때리는 빗방울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